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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만난 CEO] 바이오헬스 산업의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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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이 기사는 02월 19일(13:29)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매체 ‘한경바이오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만큼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이는 드물다. 이 대표는 제약사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바이오 벤처 대표까지 지내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LG화학 후배인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이 대표에게 궁금한 점은 뭘까. 이들의 대화를 글로 담았다.

이병건 대표는 럭키바이오텍연구소(현 LG화학 생명과학연구소) 센터장을 시작으로 한국 연구자 최초로 미국 바이오 벤 처인 익스프레션 제네틱스 대표를 지냈다. 미국 활동 당시 익스프레션 제네틱스의 사외이사를 지냈던 미국 모더나의 창립 멤버 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 대(MIT) 교수 등과 친분을 맺었다.

그러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14년 동안 녹십자·녹십자홀딩스 대표와 종근당 부회장 등 국내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을 이끈 뒤 SCM생명과학 대표로 2018년 취임했다.

이정규 대표(이하 정) 지난해 SCM생명과학이 우여곡절 끝에 상장을 했습니다. 한국 바이오 벤처의 CEO를 해보시니 어떠신가요.

이병건 대표(이하 병) 큰 제약사에서 작은 규모의 SCM생명과학으로 온 이유는 상장 과정 전반을 이끌어보고 싶단 생각에서였습니다. 펀딩(자금 유치) 작업도 하고요. 다만 작년 코로나19 공포가 가장 고점일 당시 상장을 추진하다보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한 차례 상장을 미루는 등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SCM생명과학은 작년 3월 18~19일 상장을 앞두고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상장을 미뤘다. 3월 19일은 코스피 지수가 1458까지 떨어져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날이다.)

네트워킹과 소통 능력, 기술력만큼 중요

어떤 점을 가장 많이 배우셨나요.

기업설명(IR) 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챙겼습니다. 투자할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게 가장 중요한데 지나치게 회사 입장에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교수들의 논문만 길게 붙여봐야 아무도 안 봅니다. 그런데 딱 그런 식으로 만들었더라고요.

맞습니다. 교수 출신 창업자가 이끄는 회사들의 가장 큰 오류인 것 같아요. SCM생명과학은 그런 사례는 아니지만 연구만 잘하면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줄 것이란 생각이 대부분 있죠.

그런 의미에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연구 결과가 잘 나와도 다른 사람이 모르면 소용없어요. 저는 상장 과정에서 만났던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에게 상장 때까지 SNS를 통해 회사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해 줬어요. ‘이 회사가 소통할 의지가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바이오 벤처회사들의 단점 중 하나입니다. 훌륭한 기술력과 달리 네트워킹이나 소통 능력에 강점을 보이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들과 기술수출 협상에 나서도 ‘촌티’를 팍팍 내면서 한 수 접고 들어가죠. 교수 출신 창업자가 있는 회사 상당수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전문경영인이어도 연구와 네트워킹을 전부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중국 연구자들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박사 과정을 마치고 본국에서 교수를 하려고 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미국 바이오 벤처 또는 유명 제약사에 입사합니다. 수년간 경험을 쌓고 본국에 돌아오면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인력풀에 따라 그 나라 바이오산업의 수준이 결정될 겁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바이오 벤처의 강점은 의사 결정 속도

제약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바이오 벤처로 옮기면 잘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 문화도 다르고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않다 보니 힘들어합니다. 직접 와보니 어떠신가요.

인력 구성이나 회사의 체계 등이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죠. 다만 의사 결정 속도가 빠릅니다. 한두 명이 결정하고, 책임 역시 이들이 집니다. 제약회사는 라이선스인(기술 도입)을 하거나 인수합병 (M&A)을 하려면 거쳐야 할 산이 너무 많습니다.

SCM생명과학으로 옮기자마자 두 건의 굵직한 M&A를 하셨습니다. 저도 올해 M&A를 준비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의 연속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병건 대표는 2019년 2월 미국 바이오 기업 아르고스테라퓨틱스(현 코이뮨)를 인수했다. 이 인수로 미국 식품의약국 (FDA)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cGMP)을 충족한 세포치료제 생산 시설과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지난해 1월엔 이탈리아에 있는 차세대 CAR-T(키메 라항원수용체 T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포뮬라도 인수했다.)

녹십자나 종근당 재직 당시 바이오 벤처들과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코이뮨은 2012년에 처음으로 만난 회사입니다. 회사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었죠.

파산 직전에 있었던 회사를 인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새로 진단된 전이성 신세포 암 치료제로 3상 임상에 들어간 상태였죠. 하지만 당시에 막 나온 대조약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효능을 내지 못했습니다. 대조약이 미국 제약기업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등이었죠. 이 약이 나오기 전에 임상이 끝났다면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술력이 있는 회사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존 제약사들은 임상에 실패한 데다 파산 직전 회사를 인수하는 결정을 내리긴 힘듭니다. 바이오 벤처는 가능하죠. 제가 책임을 지면 됩니다.

(이병건 대표는 성영철 제넥신 회장을 설득해 코이뮨을 경매 방식으로 공동 인수했다. 인수 당시 지분율은 SCM생명과학과 제넥신이 각각 51%, 49%였다.)

회사 체계를 다시 잡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안정적으로 임상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만드는 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코이뮨이 4500만 달러(약 51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진행했죠. 국내 투자사 중에는 한국투자파트너스(800만 달러), 마그나인베스트먼트(500만 달러), DSC인베스트먼트, DS자산운용, 브레인 자산운용 등이 3800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이 회사의 면역세포치료제 플랫폼 기술력을 인정해준 거죠.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는 혜안 갖춰야

회사 가치도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1300만 달러에 인수해서 운영 비용 등을 포함해 3000만 달러가 들어갔습니다. 제넥신과 절반 정도씩 부담했죠. 시리즈A 등의 투자와 임상이 진행되면서 가치가 이미 높아졌어요. 내년엔 조 단위 시가총액이 매겨질 겁니다. GC녹십자랩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력이 있는 세포 유전자치료제 기업들은 언젠간 빛을 볼 겁니다.

(코이뮨은 차세대 동종 CAR-T 기반 백혈병 치료제와 수지상세포 항암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cGMP 제조시설을 갖춘 면역세포치료제 생산 및 개발 기업이다.)

거의 두 달 만에 인수를 결정하셨죠. 결국 네트워크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네요. 녹십자 대표를 지내던 시절부터 코이뮨을 알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임상에 실패했다고 해서 기술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잠재력을 얼마나 잘,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가 문제죠. 예전부터 회사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고, 기회가 왔을 때 빠른 결정을 내린 것이죠.

미국 익스프레션 제네틱스 대표를 지낼 당시 맺었던 네트워크도 상당하시죠?

회사가 있던 곳이 미국 앨라배마주입니다. 인근 여섯 개 주에 있는 바이오 회사 CEO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던 자리가 있었죠. 모두 백인이고 동양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당시 만났던 사람 중 상당수가 미국 바이오 업계의 주축이 됐습니다. 녹십자 등의 대표를 지내면서 지분 투 자 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인맥이 영향을 줬습니다.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도 맡고 계십니다. 백신과 인연이 있었나요.

네트워크 얘기를 하니 생각이 났는데 익스프레션 제네틱스의 사외이사 중 한 명이 랭거 교수입니다.

한국 기업들의 백신 사업도 처음으로 이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엔 독감 백신 생산시설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현재는 독감 백신과 콜레라 등의 백신을 녹십자와 SK바이오사이언스, 일양약품, LG화학, 유바이오로직스 등에서 생산하며 해외에 수출까지 합니다. 신종플루가 처음으로 유행한 2009년 완공 해 당시 전 국민 50%에 달하는 2500만 병을 납품하는 총괄책임자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국산 백신’의 시작이네요.

코로나19 백신도 비슷하겠지만 회사들이 한 번에 원하는 수율을 맞출 수 없습니다. 당시에도 신종플루 백신 수요가 빗발쳤습니다. 한 병으로 네 명이 맞을 수 있도록 신종플루 백신과 면역증강제를 동시에 놓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빠른 생산과 접종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결과적으로는 한국 백신 산업이 한 단계 더 오를 수 있는 경험치가 됐죠. 현재의 코로나19 백신도 좋은 경험치가 될 겁니다.



바이오 벤처의 합종연횡 필요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한국은 이미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에서 세계 일류라는 사실입니다. 산업적으로도 첨단재생의료 산업은 이미 반도체(세계시장 규모 400조 원)나 자동차 산업(600조 원)보다 더 큰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은 기술력이 좋긴 하지만 작은 기업들이 너무 많아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M&A 등이나 지분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첨단재생의료를 포함해 바이오헬스 산업에서는 업종의 특성상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분 교환 등의 규제가 많습니다. 전통의 제약사와 달리 첨단재생의료 산업은 새로 태동한 덕에 업체들의 업력이 그리 오래지 않아 기업 간 인수합병을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습니다.

바이오 벤처들이 서로 합종연횡을 통해 시가총액이 3조 원이 넘는 회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글로벌하게 이 분야에서 넘버 1이 되면서 세계 첨단재생의료 산업을 리딩할 수 있습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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