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애플의 협업이 무산됐다. 두 회사의 협력설이 처음 불거진 지난달 8일 이후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됐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과 애플이 논의를 시작한 것은 맞지만, 의견이 엇갈려 결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카’ 협력 결렬 이유는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는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8일 공시했다. 협력설이 제기된 당일인 지난달 8일 내놓은 공시와 완전히 달랐다. 당시에는 “다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가 없다”고 했다. 시장에선 협상을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최근까지 “협상이 마무리 단계로 4조원 규모의 정식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잇따랐지만 결국 이날 현대차가 부인 공시를 내면서 없던 일이 돼버렸다.이날 현대차그룹은 공시 외에 어떤 설명도 내놓지 않고 철저히 함구했다. 업계에선 “계약이 완전히 물 건너갔다”와 “중단은 맞지만 논의를 재개할 가능성도 남아있다”등 엇갈린 분석이 나왔다. 결렬의 이유로는 애플의 ‘비밀주의’와 협업 방식에 대한 이견이 거론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5일 “논의가 잠정 중단됐다”고 전하면서 “각종 프로젝트를 비밀에 부쳤던 애플이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지금까지 모든 협상에서 파트너에게 엄격한 비밀준수를 요구해왔는데, 외부로 논의 사실이 유출되자 이를 문제삼아 협상을 중단했다는 설명이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과거 콘퍼런스콜에서 ‘북미 정보기술(IT) 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는데도 애플이 강력히 항의해 난감했다”며 “애플은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비밀유지 계약을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회사”라고 했다.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이해관계가 엇갈렸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애플은 디자인과 부품사 선정, 적용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기를 원한 반면 현대차그룹은 이를 거부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은 현대차와 기아가 하청업체가 되기를 원했지만, 현대차그룹은 개발 단계부터 동등한 협력관계를 희망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로이터통신은 현대차 내부에서 애플카 수탁생산업체가 되는 데 대한 반발이 컸다고 전했다.
애플이 애초에 현대차그룹 외 다른 완성차업체와도 논의를 진행해왔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애플이 혼다, 마쓰다, 닛산 등 일본 내 여섯 곳 이상의 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다시 손잡을 가능성은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협업이 무산되자 이날 증시에는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 현대차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6.2% 떨어진 23만4000원에 마감했다. 기아(-15.0%)와 현대모비스(-8.7%), 현대위아(-11.9%), 현대글로비스(-9.5%) 등 다른 계열사 주가도 5% 넘게 빠졌다. 5개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125조4000억원으로 하루 만에 13조5000억원이 빠졌다.반면 무조건 악재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산업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협상과 결렬 소식은 계속될 것”이라며 “마냥 나쁜 소식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도 “애플의 수탁생산 업체가 되는 조건의 협업은 안 하는 게 더 낫다”며 “현대차그룹은 자체적으로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개발 계획을 갖고 있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양측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현대차그룹이 “애플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은 만큼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회사의 입장 차이가 좁혀질 가능성이 없다는 관측도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이 공시 외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은 것은 재논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애플이 원하는 자율주행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완성차업체가 많지 않다는 점도 근거로 거론된다. 전기차에 적용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을 가진 완성차 회사는 현대차그룹과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정도밖에 없다. 테슬라를 추격해야 하는 애플로선 선택지가 좁다는 분석이다.
도병욱/이선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