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일(현지시간) 미얀마 군부의 정권 장악을 ‘쿠데타’로 공식 규정하며 원조 제한과 제재 강화에 들어갔다. 전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성명을 통해 미얀마 군부에 ‘권력 이양’을 요구한 데 이어 군부를 압박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나 군부에 대한 원조가 미미한 데다 주요 군부 인사가 이미 제재 목록에 올라 있어 미국의 추가 압박 조치가 얼마나 먹힐지는 의문이란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미 국무부 당국자는 이날 “모든 사실을 검토한 결과 우리는 2월 1일 버마(군사독재 이전 미얀마의 국호) 군부의 행동을 군사 쿠데타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평가는 미국 법률에 따라 자동적으로 미얀마 원조 제한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미국이 올해 미얀마에 제공하기로 한 원조액은 1억865만달러(약 1210억원)다. 이 당국자는 또 미얀마 군부 지도자는 물론 군부 내 하위직, 군부와 연계된 기업들에 대해서도 제재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미얀마 원조액 대부분은 민간에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도 미얀마 정부나 군부에 대한 원조액은 거의 없으며 인도주의적 원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탄압 등으로 이미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원조를 줄이고 군부 인사들을 추가 제재해도 쿠데타 지도부가 꿈쩍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군사적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군사적 해법이나 조처가 필요하다고는 당장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미얀마 쿠데타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AP통신은 안보리가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과 군부 규탄 등을 담은 성명서 채택을 추진했지만, 중국 러시아가 본국과 상의해야 한다고 버티는 바람에 채택이 불발됐다고 전했다.
미얀마에선 군사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확산할 조짐이다. 3일 현지 소셜미디어 등에 따르면 전날 밤 8시 전후로 최대 상업도시 양곤에서 일부 시민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냄비나 깡통을 두들기며 쿠데타에 항의했다. 한 시민은 “북 등을 두드리는 행위는 미얀마 문화에서는 악마를 쫓아낸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일부 지역에서 이런 항의가 15분 이상 지속됐으며 아웅산수지 국가고문의 자유를 요구하는 외침도 들렸다고 했다.
20곳 이상의 국립병원 의료진이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BBC 방송은 일부 병원 의료진은 쿠데타에 항의하는 표시로 검은 리본을 달았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주요 활동가 단체인 ‘양곤 청년 네트워크’도 시민 불복종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같은 항의가 거리 시위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1988년 9월 민주화운동 때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3000여 명이 숨진 유혈 탄압의 기억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아웅산수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의원 등 약 400명을 구금에서 해제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미얀마 경찰이 아웅산수지 고문을 수출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다음달 15일까지 구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웅산수지 고문의 거주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불법으로 수입된 소형 무선장치를 발견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법은 유죄가 확정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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