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압수·임금 체불… 불법 행위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미국인 모델 A씨(25·여)는 소속사와 법정 분쟁을 벌이다 최근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A씨는 지난해 6월 소속사와 3년 기한의 전속계약을 맺었다. 소속사는 “여권을 회사에 맡기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는 식의 요구를 했다. 이에 A씨는 전속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당국에 분쟁 조정 신청을 냈지만, 소속사는 되레 “전속계약 조정을 신청한 건 위법”이라며 A씨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이 사건은 반년간 수사가 이어지다 지난달 25일 A씨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며 일단락됐다. A씨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대학생 시절 어학연수를 왔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심신이 지쳤다”고 말했다.
출연료를 제대로 주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멕시코 출신 여배우 B씨는 국내 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기획사가 출연료를 수개월간 지급하지 않았다. B씨 측은 “기획사와 배우 간 출연료 배분 조건에 대한 설명이 자꾸 바뀌었고, 외국인 배우들의 비자 발급을 전담하는 다른 기획사와의 사이를 갈라놓는 등 분쟁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결국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간신히 출연료를 받아냈다.
‘언어 장벽’을 악용하는 경우도 흔하다는 게 외국인 연예지망생들의 얘기다. 스페인 출신 모델 C씨는 2019년 말 한국에 입국한 뒤 활동해오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국어를 아는 다른 외국인 친구가 “기획사에 지급하는 수수료율이 이상하다”고 지적한 것. 알고 보니 C씨는 다른 모델들이 지급하는 수수료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을 내고 있었다. C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기획사는 “계약 조건을 남에게 누설했다”며 “계약 위반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씨는 법적 분쟁 끝에 무고함을 입증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K컬처’ 꿈나무 느는데…“제도 보완 필요”
엔터테인먼트 활동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매년 꾸준히 느는 추세다. 법무부에 따르면 E-6비자(예술흥행비자)를 받아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은 2017년 말 3765명에서 2019년 말 5436명으로 44%가량 증가했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E-6비자 발급이 줄었지만 영화계와 방송가에서 활동하겠다며 국내에 새로 입국한 외국인만 1700여 명에 달했다. 작년 11월 말 기준 누적 E-6비자 발급자는 3062명이다.코로나19 사태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외국인 연예지망생들을 위해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국제선 항공 운항 횟수는 지난달 초 기준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해 93% 이상 줄어든 상태다. 한국에 발이 묶인 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연예지망생들이 임금 체불이나 과도한 수수료 등 부당한 계약 조건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리버티의 이지은 변호사는 “수많은 외국인이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서 활동하겠다는 꿈을 품고 입국했다가 각종 위법 행태에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 발전을 위해서라도 당국의 감독과 지원, 면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