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금융위원회가 28개 기업에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본허가를 내주면서 금융권의 ‘마이데이터 전쟁’이 본격화했다. 하지만 카카오페이처럼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 심사 과정에서 난항을 겪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금융정책 곳곳에 숨어 있는 ‘규제의 디테일’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질의에 묵묵부답 인민은행
개정 신용정보법에 따라 통합 자산조회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따내야 한다. 자본금, 보안체계, 사업계획, 전문성 등 여러 심사요소가 반영되는데 문제가 된 것은 ‘대주주 적격성’이다. 의결권 있는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주(주요주주)가 제재를 받거나 소송이 진행 중이면 심사를 중단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카카오페이의 2대 주주인 중국 앤트그룹(알리페이)이 현지에서 제재받은 이력이 있는지를 인민은행에 질의했다. 그러나 인민은행은 이날까지 명확한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마이데이터 심사가 무기한 중단된 곳은 카카오페이만이 아니다. 하나은행·하나금융투자·하나카드·핀크 등 하나금융 계열 4개 업체는 ‘정유라’에 발목이 잡혔다. 2017년 참여연대 등은 정씨에게 특혜성 대출을 내어준 하나은행 직원을 승진시켰다며 하나금융지주 등을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 사건은 4년째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경남은행도 대주주인 BNK금융지주가 주가 시세조종 혐의로 최근 1심 법원에서 벌금을 선고받아 심사가 보류됐다. 삼성카드는 최대주주 삼성생명이 암 보험금 지급 문제로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기관경고 중징계를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핀크, 경남은행, 삼성카드 등은 최근 “2월부터 자산조회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이용자들에게 공지했다.
금융위 “심사요건 미리 다 공개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우회로’를 찾아 피해갔다. 이 회사 지분 17.66%를 보유한 미래에셋대우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보통주를 전환우선주로 바꾸는 방식으로 미래에셋대우의 의결권 있는 주식 지분율을 9.5%로 끌어내려 심사를 통과했다.금융위 관계자는 “최대주주뿐 아니라 주요주주도 경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적격성을 봐야 한다”며 “여러 금융업 인허가에서 마찬가지”라고 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마이데이터 허가 절차에 대한 세부규정을 지난해 7월 업계에 배포했다. 카카오페이도 앤트그룹이 심사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민은행의 무응답’에 계획이 흔들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카카오와 앤트그룹은 한국과 중국에서 대형 로펌까지 동원해 ‘심사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뛰고 있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앤트그룹은 직접 금융사업을 하는 회사가 아니어서 인민은행 관할이 아니다”며 “인민은행은 제재 내역을 홈페이지에 모두 공시하는데 앤트그룹 관련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인민은행의 확답을 받아야 심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뒤늦게 제도 정비 나선다지만…
마이데이터에서 구현되는 서비스는 기존 핀테크업체들의 통합 자산조회 기능과 비슷한 면이 많다. 다만 기술 방식이 다르다. 대부분 핀테크 업체는 이용자 동의를 받아 금융회사 서버에 접근해 정보를 긁어오는 스크래핑(scrapping) 방식을 써왔다. 마이데이터에서는 금융권이 공유하는 오픈 API(앱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에서 정보를 받아가야 한다. 오는 2월 5일 이후에는 마이데이터 미허가 업체가 스크래핑 방식으로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면 ‘불법’이 된다. 최장 6개월의 업무 정지나 5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마이데이터 허가를 받은 업체도 8월부턴 스크래핑이 금지된다.당국도 현행 심사중단제도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다음주 심사중단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관련 법 전체를 모니터링하고 개선책 마련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들은 “금융과 전혀 무관한 일로 신사업에 제약을 받는 일은 없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