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정부 기반이 무너지며 막다른 길로 내몰린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26일(현지시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콘테 총리는 이날 오전 내각 회의를 소집해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사임계를 낼 예정이다.
콘테 총리의 사임은 꽉 막힌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승부수다. 그의 사퇴로 마타렐라 대통령 주관 아래 정당 간 새 연정 구성 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27일부터 주요 정당 지도부를 차례로 만나 연정 구성 권한을 가질 총리 후보를 물색할 예정이다. 현지 정가에서는 콘테 총리가 연정 구성권을 다시 부여받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거론하고 있다.
연정 핵심축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M5S)과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PD) 지도부도 콘테 총리의 연임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콘테 총리가 다시 기회를 가진다면 이념적 스펙트럼을 중도까지 넓힌 거국 연정 구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새로 구성될 연정이 현 의회 임기가 마무리되는 2023년까지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테 총리를 중심으로 새 연정이 수립될 경우 '콘테 3기 내각'이 된다.
법학 교수 출신으로 당적이 없는 콘테 총리는 2018년 3월 총선에서 원내 1당에 오른 오성운동의 천거로 총리직에 올라 1년 2개월간 오성운동과 극우 정당 동맹(Lega) 간 연정을 이끌었다. 그는 2019년 8월 조기 총선을 통해 단독 집권을 노린 동맹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연정이 붕괴하며 퇴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오성운동과 민주당 간 새 연정 구성에 막후 중재자 역할을 하며 총리직에 유임됐고 이후 1년 4개월에 걸쳐 2기 내각을 지켜왔다.
다만 이번에도 다시 총리직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당장 동맹이 이끄는 우파연합은 콘테 3기 내각 구성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콘테 총리의 사임으로 앞으로 이탈리아 정국의 불확실성이 더 증폭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정국 위기는 민주당 탈당파가 주도하는 '생동하는 이탈리아(IV)'가 정책적 견해 차를 이유로 연정 이탈을 선언하며 초래됐다. 총 321석인 상원에서 과반이 무너지며 국정 운영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표면적 원인은 이탈리아에 할당된 2090억유로(약 280조3546억원) 규모의 유럽연합(EU) 코로나19 회복 기금의 쓰임새, 유럽판 구제금융인 '유럽 안정화 기금'(ESM) 사용 문제 등을 놓고 누적된 갈등이다. IV의 실권자로 2014∼2016년 총리를 지낸 마테오 렌치 상원의원과 콘테 총리 사이의 정치적 반목도 하나의 원인으로 언급된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