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클래식 애호가들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새해 첫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보고 의아했다. 희망찬 곡들을 주로 들려주던 신년음악회에 맞지 않게 어둡고 우울한 레퍼토리가 실려있어서다. 선곡을 한 사람은 지휘자 성시연. 2019년이후 2년만에 서울시향 지휘를 맡았다.
그는 지난 21~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코로나19로 우울한 시대상을 보여줬다. 성시연은 공연에 앞서 "어둠을 직시해야 빛을 바라볼 수 있다"고 선곡 의도를 밝혔다. 침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오케스트라 선율로 풀어 내겠다는 뜻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44번'(슬픔)과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장송 음악',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실내 교향곡'을 들려줬다. 무거운 분위기가 공연장을 채웠다. 약 100분 동안 암울하고 스산한 연주가 이어졌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전체적으로 잘 짜인 선곡에 완성도 높은 연주가 돋보인 공연이었다"고 총평했다.
첫 무대에 올라온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44번'(슬픔) 연주부터 강렬했다. 쳄발리스트 오주희를 객원으로 내세워 오케스트라 선율을 한층 풍성하게 들려줬다. 현악5부 합주에 바순의 묵직한 저음, 쳄발로 소리가 어우러졌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질풍노도란 감정이 드러난 연주였다"며 "듣다 보면 울분에 차 질주하는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무대에선 생소한 선율이 들렸다. 서울시향 단원들도 처음 연주하는 루토스와프스키의 '장송 음악'과 쇼스타코비치의 '실내 교향곡'이었다. 서울시향 조직력이 돋보였다. 서른한 명의 현악주자들은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현악 주자들의 조직력이 인상깊었다"며 "단원들은 긴밀하게 합주하며 비극을 더 극적으로 강조해냈다"고 평했다.
성 지휘자의 단원 배치도 눈길을 끌었다. 지휘자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제2바이올린을 둔 후 더블베이스 주자들을 첼로 뒤에 놓은 것이다. '독일식'(유럽식)으로 불리는 오케스트라 배치법으로, 지휘자들이 풍성한 음향효과를 낼 때 활용한다. 황 평론가는 "음향을 더 효과적으로 내기 위한 배치로 보인다"며 "제1바이올린 수석(신아라)과 첼로 수석(주연선)의 독주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곡이다. 둘은 진중하면서도 훌륭한 앙상블을 들려줬다"고 분석했다.
성 지휘자의 과감한 선곡과 완숙한 서울시향 단원들의 연주가 엮인 명연이었다. 관객들이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류 평론가는 "을씨년스럽고 귀기가 서렸다"고 했고, 허 평론가는 "거대한 우울함이 관객들을 에워싼 공연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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