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찾은 경기 시화국가산업단지. 공장들 벽면엔 ‘중고기계 매입’ ‘저당·체납·폐차·말소’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가동이 중단된 채 철제 출입구가 굳게 닫힌 공장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공단에서 마주친 한 근로자는 “매각하거나 사업을 접고 임대로 내놓은 공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관련 각종 지표에도 일제히 빨간불이 켜졌다.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신청은 1069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건을 넘어섰다. 2019년(931건)보다 14.8% 늘어난 수치다. 법원이 파산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이 중 상당수가 중소 제조업체다. 전국 산업단지의 공장과 설비 매물이 급증하는 건 이 여파다.
중소제조업 취업자 수는 급감하는 추세다. 중소기업연구원과 통계청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취업자 감소 폭(전년 동월 대비)은 지난해 11월 10만4000명에 이어 12월엔 11만9000명으로 커졌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고용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중소제조업의 취업자 수가 줄어든다는 건 주식회사 한국의 성장 엔진이 하부에서부터 얼어붙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제조업 부활에 나서고 있는 독일 영국 미국 등과 대조적이다. 독일의 연방경제에너지부(BMWi)는 2019년 ‘국가 제조업 전략 2030’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인 제조업 비중을 2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김은 한국ICT융합네트워크 부회장은 “독일은 첨단기술 기반 제조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도 서비스업 중심의 정책에서 선회해 제조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주영섭 고려대 공학대학원 석좌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별도의 제조업 육성책을 내놓지 않던 영국이 최근 다시 산업별 정책을 내놓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산업 전문가 마키노 노보루는 《제조업은 영원하다》라는 저서에서 ‘한 국가의 제조업 비중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국력이 쇠퇴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주 교수는 “제조 생태계의 기반이 되는 중소업체들이 무너지면 대기업은 물론 수출 의존도가 큰 경제 전반이 흔들리게 된다”고 경고했다.
안대규/이정선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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