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선도했던 잡지로서 그 혁신적 문학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어요. 노작 홍사용 시인(1900~1947)은 ‘눈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의 왕국’이라고 말했죠. ‘백조’라는 이름 그대로 흰 눈 같은 순백의 공간에서 작가들이 그늘진 곳에 있는 민초들의 목소리를 맘껏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경기 화성에 있는 노작홍사용문학관의 손택수 관장(51·시인·사진)은 문예동인지 《백조》를 근 100년 만에 계간지로 복간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1998년 등단한 시인인 손 관장은 《백조》 복간의 숨은 주역이다. 그는 “100년 전 목소리를 이 시대에 재전유하면서 변례창신(變例創新: 옛것을 참조해 새것을 만들어 냄)하는 계간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백조》는 홍사용과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박영희 이상화 등 근대 문학청년들이 뜻을 모아 1922년 1월 1일 창간했다. 제호는 ‘하얀 파도(白潮)’ ‘흰 물결’이라는 뜻이다.
“당시 작가들은 고여 있지 않고 새로운 지형들을 향해 물결치는 매체가 되길 바랐어요. 누구나 낯섦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쉽지만 그 싱싱한 두려움과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제호로써 보여준 거죠.”
《백조》는 재정적 어려움과 일제 탄압에 의해 1923년 9월 3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복간호는 당시의 역사를 잇는다는 뜻에서 통권 4호로 발행됐다. 손 관장은 “100년 전 《백조》가 나라 잃은 슬픔과 아픔에서 출발했다면 이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복간호의 주제를 ‘레트로-토피아’로 잡은 것도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에서 시작해 미래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100년 전 《백조》에는 민족주의부터 자연주의, 마르크스주의까지 다양한 계파가 다층적으로 참여했다. 폐간 이후 신경향파 문학단체인 카프(KAPF) 등 여러 문학운동으로 이어지는 데 기여했다. 이를 두고 손 관장은 “《백조》의 창조적 해체”라고 설명했다.
“당시엔 나라 잃은 시대의 그늘 속에서도 창조라는 낯선 욕망들이 다양한 문학이념을 가진 문인들을 통해 새롭게 솟아올랐잖아요. 2021년의 《백조》도 다양한 시각을 가진 문학 연구자들과 문인들이 마음껏 자기 문장을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됐으면 합니다.”
《백조》의 또 다른 꿈은 문단 내 ‘선한 영향력’이다. 국내 문예지 최고 수준의 원고료를 작가들에게 주기로 한 이유다.
“기존 문예지와 경쟁하기 위해 원고료를 많이 주는 게 아닙니다. 많은 작가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의 원고 가치를 정확히 반영해줌으로써 더 좋은 작가와 작품이 재생산되는 하얗고 선한 물결을 일으키고 싶어요. 이른바 ‘공공문학’을 주도하는 중심에 우뚝 섰으면 좋겠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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