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21일 자영업 손실보상제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안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난색을 보여온 기획재정부는 정 총리가 강하게 압박하자 관련 논의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가 자영업 손실보상제를 이슈화해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존재감을 키우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기재부 항복 받아낸 정세균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의 방역 기준을 따르느라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분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제는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정 총리의 지침은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23조 3항에 근거하고 있다.이에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손실보상제 제도화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손실보상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상세히 검토해 국회 논의 과정에 임하겠다”며 “저희가 반대하고 그런 게 아니라 해외 제도를 소개한 것이 대외적으로 그렇게 비춰졌다”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기재부는 손실보상제에 대해 “이를 법제화한 해외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손실보상에 월 최대 24조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이를 감당할 재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기재부의 보고를 받고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 “개혁 과정엔 항상 반대·저항 세력이 있지만 결국 사필귀정”이라며 기재부를 공개 질타했다.
여야, 법제화에 공감
기재부가 손실보상제 법제화 검토에 나서면서 관련 국회 논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여야는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상황이다.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손실보상제를 언급하며 “의원들께서 관련 법안 발의를 해주셨고 현재 정부와 보상근거 규정에 대한 법제화, 안정적인 보상 방법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정부 지침에 따라 영업을 못 하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하는 것은 정부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한 방송 인터뷰에서 자영업자 손실보상법과 이익공유제 관련법, 사회연대기금 조성 관련법 등 ‘코로나 3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야당도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재원 투입과 관련 제도 법제화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상공인·자영업자 경제 손실 등을 어떻게 보상할지 검토할 시기”라며 “정부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6월 국민의힘 의원 102명과 공동으로 발의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손실보상제 법제화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피해와 보상의 기준이 불분명하므로 제도화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손실보상이 법제화되면 고질적인 재정 악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권 본격 시동 거는 정세균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의 ‘손실보상제 법제화’ 움직임을 놓고 차기 대권 주자로서 존재감 부각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처럼 정 총리가 국민적 관심이 큰 이슈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정 총리의 행보는 최근 이 지사와 여권 대권 주자 양강 체제를 구축했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주춤하는 가운데 민주당 내 3위 주자 경쟁이 치열해진 것과도 맞물린다. 민주당 관계자는 “그동안 유지됐던 양강 체제가 허물어지는 느낌”이라며 “이번 기회에 여권 주자 내 구도 개편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 총리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당내 여론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소현/강진규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