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수차례 도전 끝에 애플 아이폰 패널에 대한 한국 업체 독점 구도를 깼다. BOE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다.
20일 디스플레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BOE는 이르면 이번주 애플에 6.1인치 아이폰12용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납품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기업의 패널이 아이폰에 탑재되는 첫 사례다.
애플은 2017년 '아이폰X'을 시작으로 OLED 디스플레이 채택 비율을 늘려왔다. 그간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실상 독점으로 OLED 패널을 공급해온 가운데, LG디스플레이도 2019년 '아이폰11 프로' 등에 OLED 패널을 넣었다.
아이폰12 시리즈의 경우 삼성디스플레이는 5.4인치 아이폰12 미니·6.1인치 프로·6.7인치 프로 맥스에, LG디스플레이는 6.1인치 아이폰12에 OLED 패널을 공급했는데 BOE의 신규 진입으로 한국 업체의 독점 구도가 깨진 것이다.
BOE는 애플의 문턱을 넘기 위해 최근 몇 년간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19년부터 애플의 OLED 패널 공급사 지위를 획득한 BOE는 전용 라인 구축과 대규모 투자 등을 단행했지만, 애플의 품질 테스트 등 승인 절차를 넘어서지 못해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BOE는 지난해 3분기 화웨이 등 중국 업체 패널에 납품하는 중국 쓰촨성의 6세대 플렉서블 OLED 팹 'B7'으로 아이폰12 패널 공급에 도전했지만 최종 탈락했다.
BOE는 지난해 12월 말 애플로부터 패널 공급 최종 승인을 받고 납품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기술(IT) 매체 '기즈모차이나'에 따르면 BOE는 이번엔 수율이 비교적 높은 B7에서 패널을 만들고, 모듈은 애플 전용 라인이 있는 B11 팹을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BOE가 이번에 아이폰12에 배정받은 물량은 리퍼브(수리)에 쓰이는 모델 등 소량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BOE가 매우 까다롭기로 소문난 애플의 테스트를 뚫고 공급망에 진입한 것 자체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형 OLED 부문에서 수율 등 중국 업체와 기술 격차는 아직 크다"면서도 "추격이 매우 거세다는 것은 내부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실제로 국내 업체와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아직은 매우 큰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형 OLED 시장에서 압도적 1위 삼성디스플레이를 포함해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매출 기준)은 84.9%로 집계됐다. 중국(14.1%), 일본(0.6%) 등 경쟁국을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다만 일각에선 BOE가 이번 애플의 납품을 앞세워 삼성전자를 포함해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패널 공급처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애플이 올 가을께 출시할 '아이폰13(가칭)' 시리즈에도 BOE 패널이 일부 탑재될 가능성이 있는 것로 알려졌다.
애플은 아이폰13 시리즈의 상위 모델 2종에 처음으로 120헤르츠(Hz) 화면 주사율의 터치일체형 OLED 패널을 탑재할 계획이다. 주사율이 높으면 역동적인 화면 등을 더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지만 전력 소비량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애플은 이를 위해 소비 전력이 좋은 '저온다결정산화물(LTPO)-박막트랜지스터(TFT) 기술을 탑재한 패널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당 패널은 모두 국내 업체가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아이폰13 하위 모델 2종은 기존 아이폰과 동일한 60Hz 화면 주사율에 저온폴리실리콘(LTPS) 기반 패널이 탑재되는데, 여기에 BOE가 일부 물량을 공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아이폰13 시리즈 4종은 아이폰12 시리즈와 유사하게 5.4인치 미니·6.1인치 기본·6.1인치 프로·6.7인치 프로 맥스(모두 가칭)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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