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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이념 대립에 가려졌던 한인 최초 여성 사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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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러시아 연해주의 중국 접경마을 시넬리코보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여자아이가 있다.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이다. 어린 시절 동청철도 건설 현장과 우랄산맥 벌목장 등지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목격한 그는 억압과 착취를 당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근로자의 권리와 인간 존엄성에 눈을 뜬 알렉산드라는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등 러시아로 건너온 소수민족을 대변해 우랄노동자동맹을 이끈다. 하지만 러시아 반혁명 세력인 백위군에 체포돼 총살당한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기자 출신 소설가인 정철훈 작가가 쓴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은 한인 최초의 여성사회주의자였던 알렉산드라의 일대기다. 저자는 1992년 러시아 외무성 외교과학원에서 ‘10월 혁명시기 극동러시아에서의 한민족해방운동-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와 러시아에서 출간된 알렉산드라에 대한 여러 소설과 평전을 정리하고 자료를 집대성해 그의 삶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알렉산드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설 형식을 빌려 보여준다. 숨통을 조여오는 차르 헌병대의 감시망을 피해 블라디보스토크 나고르나야 14번지에 살던 그의 흔적을 숨 가쁘게 좇는다. 알렉산드라가 황급히 기차에 올랐을 오케안스크 역을 서성일 때의 감정을, 러시아 극동에서 우랄의 산악 지역까지 절실했던 감정을 생생하게 펼쳐놓는다. 저자는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내디딘 그녀의 발걸음은 우상으로서 알렉산드라가 아닌, 인간 알렉산드라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노동계에선 알렉산드라를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국제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민족의식의 경계를 극복한 인물’로 저자는 재평가한다. 그런데도 이름이 생소한 것은 독립투쟁 시기부터 100년 넘게 이어진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투쟁해온 혁명가의 삶을 이념 대립이 역사에서 송두리째 지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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