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가해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에서 이와 관련한 첫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조성필)는 14일 지난해 총선 전날 동료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장 비서실 전 직원 A씨에 대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피해자인 B씨는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인물이다. 이날 재판부는 피해자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도 일부 인정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해자인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자신의 행위가 아닌 박 전 시장의 행위로 생긴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재판부는 A씨의 성폭행과 피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면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B씨가 박 전 시장의 비서로 근무하는 동안 박 전 시장이 속옷 사진과 '냄새를 맡고 싶다' '몸매 좋다' '사진 보내달라' 는 등의 문자를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또 B씨가 다른 부서로 옮겼는데도 박 전 시장은 '남자에 대해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갈 수 있다' '성관계를 알려주겠다'고 문자를 보낸 사실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박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게 된 근본원인은 A씨에게 있다고 봤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고소했지만 (박 시장 죽음으로) 법적으로 호소할 기회를 잃었다"며 "그런데 재판부가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일정 부분 판단해주셔서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B씨의 어머니가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중 일부 내용도 공개했다. B씨 어머니는 "혹시라도 우리 딸이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집을 버리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며 "우리 딸은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을 뒤적거린다"고 밝혔다.
이어 "뉴스를 확인하고 악성 댓글들을 보고 어쩌다 잠이 든 딸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는 우리 딸이 정말 숨을 쉬지 않는지 확인을 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김재련 변호사를 포함한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은 선고에 대한 입장을 통해 B씨에 대한 2차 가해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B씨의 실명과 얼굴이 담긴 동영상, 소속기관, 전신 사진 등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
앞서 '조국백서' 추진위원장인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와 민경국 전 서울시 인사기획비서관은 박 전 시장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페이스북에 A씨의 실명을 노출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고 주변인의 방조 혐의도 무혐의 처리키로 하자 박 전 시장 측근들은 '사필귀정'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역공에 나서기도 했다.
오성규 전 서울시 비서실장은 "경찰 조사에 의해 고소인 측 주장이 거짓이거나, 억지 고소·고발 사건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 주장은 진실을 덮는 도구로 악용됐고, 고소인 측의 '4년 성폭력' 주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역임해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원순 성추행·관계자 성추행 방조 의혹 모두 '불기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다.
윤준병 의원은 지난해 7월에도 "박원순 시장님은 누구보다도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이셨다고 기억한다. 순수하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라 고소된 내용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주변에 미안함을 느꼈을 것 같다"며 "이후에 전개될 진위여부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과 논란 과정에서 입게 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죽음으로서 답하신 것이 아닐까"라고 주장해 논란이 됐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