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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허용 첫날 찾은 헬스장…"다 때려치우고 싶다"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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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허용 첫날 찾은 헬스장…"다 때려치우고 싶다"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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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8일부터 모든 실내체육시설에 대해 영업금지 조치를 제한적으로 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실내체육시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어렵다는 호소가 쏟아지자 내린 조치다.

조건을 달았다. 동시간대 사용 인원을 9명으로 제한하고, 이용 대상은 아동·청소년으로 제한했다. 앞서 정부가 '돌봄 기능'을 위해 태권도·발레 학원 등 소규모 체육시설만 영업을 허용하면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실내체육시설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제한적 영업허용 첫날 찾은 현장은 불만이 컸다. 헬스장(피트니스), 필라테스 학원 등 성인 회원이 대다수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란 목소리가 높았다. 업주들 사이에서는 오는 17일까지인 집합금지 조치가 추가 연장될 경우 "무슨 일이라도 낼 것 같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헬스장·필라테스 대부분 문 안열어…"때려치우고 싶다"
지난 8일 오후 1시경 <한경닷컴>이 찾은 경기 신천역 인근 실내체육시설들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이날부터 제한적 영업이 가능했지만 대다수가 문을 닫았다. 주변에 밀집한 헬스장 4곳, 필라테스 학원 4곳 중 영업 중인 곳은 여성 전용 필라테스 학원 한 곳뿐이었다. 그마저도 수강생은 한 명도 없었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복도에 불도 켜지지 않은 상가만 마주해야 했다. 한 헬스장엔 오랜 기간 휴관 중이란 사실을 증명하듯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패널에 나붙었다. 아예 입구를 막아두기도 했다. 문 앞에 붙은 '특별 할인' '선착순 모집' 등의 현수막이 무색한 모습이었다.


'휴관 재연장 안내' 문구를 붙여놓은 한 헬스장에서 인기척이 들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업주 장모씨(54)는 놀란 토끼 눈이 됐다. 그는 "수도와 보일러가 다 터져 수리공을 불렀다"며 울상을 지었다. 5주째 영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근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이다.

장씨는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계속 휴관하고 있는데, 수도와 보일러를 교체해야 한단다. 또 100만원 돈 나가겠다"며 "어제 수도가 동파돼 혼자 물을 치우는데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하고 싶겠나"며 울먹였다.

장씨는 정부의 제한적 영업 조치에 대해 울분을 쏟아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조치다. 무게 나가는 운동기구를 아이들이 어떻게 하느냐"며 "GX, 스피닝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데 위험시설이라고 헬스만 하래서 그대로 따랐고 이래서 쉬어라, 저래서 쉬어라 해도 수긍했다. 그런데 태권도는 되고 우리는 안 되고, 아이들은 되고 성인은 안 된다면서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해당 시설 내 운동기구 2개 중 하나씩은 '1~2m 거리를 유지해주세요' '사용금지'라는 스티커가 꼼꼼히 붙어 있었다. '기구 사용 후 손잡이를 소독해주세요'라는 안내 문구와 소독제, 손수건도 시설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는 "월세와 관리비 다 내면서도, 더 강력히 제한해도 되니 운영만 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버티다 버티다 이제 기대하기도 지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효성 없다, 보여주기식"…정부는 "형평성 갖춘 조치"
필라테스 학원들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사이로 기구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개업한 지 5일 만에 문을 닫았다는 한 필라테스 학원 상담실장 강모씨(32)는 "미성년자 9인 제한은 말도 안 되는 조치"라며 "지금 다들 환불 건으로 몸살"이라고 털어놨다.


업계 상황은 정부가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17일에는 풀리지 않겠나 싶어 그것만 보고 있다. 체육인들끼리 모여있는 그룹 채팅방 분위기를 보면, 정부가 영업 금지 조치를 연장할 경우 폭동 한번 크게 낼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는다"고 전했다.

3단계 거리두기 조치 등 더 강도 높은 대책으로 단기간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를 잡았어야 했다고도 했다. 그는 "계속 같은 상황이 이어지니 너무 힘들다. 차라리 전체적으로 3단계로 높여서 빨리 끝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추가 조치가 주로 성인이 이용하는 헬스장, 필라테스 학원 등의 시설에서는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정부도 일부 한계를 인정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지난 7일 "헬스장의 (학원과 동일한) 교습 형태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조치는 교습과 강습에 한해 학원과 실내체육시설에 동등한 조건을 주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영업점주 손해 보전보다는 돌봄 기능 보전, 형평성 문제 해소에 무게를 뒀다는 뜻이다.


시민들조차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식 정책" "면피용 졸속대책"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회사원 김모씨(52)는 "코로나 시기에 청소년 자녀를 헬스장에 맡기는 부모가 어디 있나. 상식선에서 모두가 이해할 만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프리랜서 김모씨(27)도 "반발이 심하니 조용히 하라는 입막음 아닌가. 일이 벌어지면 이를 막으려고 급하게 조치를 내놓은 게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정부, 일방적 수칙 하달…소통 부재·투명성 문제"
정부가 업계나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기준을 내린 게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방역정책 자문기구인 생활방역위원회 민간위원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저를 포함한 몇몇 위원들이 정책 결정 이전에 업계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과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세스가 따로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점을 당국에 전했다. 그런 면에서는 정부가 미진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조치 근거와 판단기준 등을 세밀히 설정하고 밝히는 투명성도 업계 수용성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며 "경험적 데이터를 알리고, 이를 기반으로 수칙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어떤 기관에서 어떠한 부분이 위험한 것인지, 피해야 할 곳인지 등에 대한 통계 분석을 진행해 알려야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도 "방역수칙은 형평성은 물론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준수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생활방역'이란 이름을 걸고 가이드라인 지침을 만들었으면, 업종 관계자들과의 충분한 교감이 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활방역이라고 하면 사회적 합의가 수반돼야 한다. 정부가 업계 관계자, 방역전문가들과 모여 각 상황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늦은 감이 있으나 이들에 대한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인 계획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의 참여도와 신뢰도가 올라가야 방역효과를 제대로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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