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소상공인과 생계형 자영업자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은 “자영업자를 예비 범법자로 규정한다”는 소상공인들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무리한 법을 제대로 된 의견 수렴도 없이 밀어붙이다가 당사자의 반발에 부딪히면 땜질식으로 수정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처벌 관련 법만 나오고 예방과 관리 점검 부분이 소홀했다”면서도 “지금 법 통과가 일단 급하니까 한다”고 졸속 입법 추진을 자인했다.
생계형 자영업자는 빠져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중대재해법 처벌대상에서 제외된 소상공인 기준은 ‘상시 근로자 5인 미만’이다. 이는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따른 것이다. 소상공인보호법에 따르면 광업·제조업·건설업 및 운수업(10명 미만)을 제외한 모든 업종은 상시 근로자를 5명 미만으로 둘 경우 소상공인으로 분류한다. 여야는 여기에 영업장 규모가 1000㎡ 미만이면 생계형 소규모 영업장으로 분류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당초 법안에는 음식점, 노래방, PC방,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를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해 자영업자까지 처벌대상에 포함해 논란이 일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소상공인들을 예비 범법자로 규정하는 것이며 장사를 접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이런 요구에 따라 상시 근로자 5인 미만은 제외됐지만, 근로자를 ‘4인’으로 맞추기 위한 해고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날 소위에서는 학교 및 학교장을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안도 최종적으로 재논의됐다. 다중이용시설에 학원이 포함돼 있는데 법안에 학교는 빠졌다는 여당 내 강경론자들의 지적이 나오면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학교·학교장을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중대재해법 논의를 중단·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고의로 사고를 낸다면
근로자 사망 시 징역 2년 이상으로 규정된 처벌 규정은 ‘1년 이상 징역’으로 수위를 ‘찔끔’ 낮추는 데 그쳤다. 근로자 상해 사고 시 7년 이하 징역형은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조정했다. 중대재해 야기 시 1년 이상 징역 등을 규정한 공무원 처벌 조항은 ‘형법 제122조의 죄를 범하여’라는 조건에 한정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즉 직무유기(형법 제122조)가 확인된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해 사실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셈이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인과 관계를 현실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워 공무원 처벌 규정은 최종안에서는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의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근로자를 처벌하는 규정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노동계에서 중대재해법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 예로 드는 호주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의 의무도 규정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근로자도 처벌 대상이 된다. 재계 관계자는 “해고 노동자가 사업장에 복귀해 자해한 경우에도 고용주는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 중단 호소한 경제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중대재해법안은 헌법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 등에 크게 위배돼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과 산업현장 관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이라며 “법안이 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정법일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라 해도 사전에 충분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만큼, 대기업도 시행시기를 최소 2년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중소기업계는 전날 여야 원내대표에 이어 윤호중 법사위원장을 만나 중대재해법 제정 중단을 촉구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원·하청 구조와 열악한 자금 사정 등으로 중소기업들은 모든 사고의 접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법 제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현/김소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