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20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해 농축수산물 가격은 작년보다 6.7% 상승했다. 2011년(9.2%) 이후 9년만에 가장 많이 뛰었다. 농산물(6.4%), 축산물(7.3%), 수산물(6.4%) 가릴 것 없이 많이 올랐다.
◆돼지고기 11% ↑ 김치 9% ↑
농산물에선 양파(45.5%)와 배추(41.7%) 등이 40% 넘게 올랐다. 돼지고기(10.7%)와 국산쇠고기(8.3%) 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육류는 채소보다 기본적으로 비싸다는 점에서 가격 상승이 더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이달 한우등심(1+등급) 소매가격은 kg당 약 12만1000원으로, 평년 수준(10만8000원)보다 1만원 이상 올랐다. 서민이 많이 찾는 가공식품 가격도 올랐다. 김치 가격은 작년 0.3% 올랐지만 올해는 8.9% 치솟았다. 햄·베이컨(-1.6% → 4.5%), 탄산음료(1.0% → 4.8%), 참기름(4.7% → 9.7%) 등도 구매 부담이 커졌다. "장 보기가 무섭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밥상 물가 상승의 1차적 원인은 수요 증가에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콕족(집에만 콕 박혀 있는 사람)'이 늘면서 식재료·가공식품 수요가 뛴 것이다. 농산물의 경우 올해 장마·태풍 등 악재가 겹쳤다. 농산물 작황이 나빠지면서 생산·공급이 불안해졌고, 이것이 가격을 밀어올렸다. 8.6% 가격이 오른 달걀은 조류독감(AI)으로 생산에 타격을 받았다.
밥상 물가 상승세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달 소비자물가는 0.5% 오르는 데 그쳤으나 농축수산물 가격은 9.7% 뛰었다. 농산물(11.3%)은 지난 8월부터 5개월 연속 두자릿수 상승률이 이어지고 있다. 좀 더 정교한 농산물 안정 가격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먹거리 외에 집세도 서민의 시름을 키웠다. 집세는 작년 0.1% 감소에서 올해 0.2% 증가로 돌아섰다. 전국적인 전·월세난 탓이다. 특히 서울은 집세 상승률이 작년 0.3%에서 올해 0.7%로 뛰었다. 서울 전세와 월세는 각각 0.9%, 0.5% 올랐다. 올해 서울 월세 상승률은 2016년(0.6%) 이후 가장 높았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21년만에 최저
밥상 물가·집세 상승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반적으로는 '저물가' 현상이 심화하는 것이 사실이다. 작년 하락세가 본격화한 경기가 코로나19로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올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0.5%)은 작년(0.4%)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한국의 경제 수준이면 연간 2% 정도의 물가상승률이 적정한데, 0%대 상승률이 이어지는 건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경기 온도계'로 불리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올해 0.4% 오르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2%) 이후 최저치다. 근원 물가는 날씨 등 외부 요인에 따라 물가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 지표를 말한다.
서비스 가격 상승률은 올해 0.3%로, 작년(0.9%)보다 더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외식 물가 상승률이 1.9%에서 올해 1.2%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을 자제한 영향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입은 호텔은 숙박료가 6.1% 하락했다. PC방 이용료도 1.1% 내려갔고, 노래방 이용료는 0.8% 상승에 그쳤다. PC방·노래방은 정부로부터 영업 금지 조치를 당했다.
공공서비스 가격도 1.9% 하락했는데, 이는 정부의 복지 정책 확대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무상교육·무상급식, 통신비 2만원 지급 정책 등으로 관련 가계 지출이 줄었다.
공업제품은 0.2% 내렸다. 작년과 같다. 소비 침체 외에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 휘발유(-14.1%), 경유(-18.9%) 등 가격이 줄줄이 내렸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