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 책상에는 A4 용지로 된 서류가 쌓여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안 원문과 문제점 및 대안을 다룬 자료들이었다. 양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마치 노사 간 갈등으로 불거지고 있다"며 "산업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으로서 가만히 두고만 볼 수는 없어서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자료에는 양 의원이 직접 형광펜으로 밑줄 친 흔적과 메모가 가득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근로자가 사망에 이르거나 중상을 입었을 때 사업주, 경영 책임자, 공무원 등 관련 책임자를 광범위하고 강한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정의당과 민주당 내 진보 계열 일부 의원이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모호한 의무, 과도한 처벌, 위헌 소지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근로자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법안의 정당성에만 함몰돼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양 의원이 총대를 메다시피 했다. 양 의원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28년 동안 일반 근로자로 일하다가 임원까지 오른 인물이다. 양 의원은 "안전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제품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 없고, 근로자 역시 불안에 떨며 일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근로자에게는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란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담당한다.)
"나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다. 반도체 사업장에도 위험요소가 많다. 설계 분석을 하려면 웨이퍼의 보호막을 벗겨내야 하는데 이때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룬다. 제대로 된 지침이 없으면 사고가 일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 민주당 내에서 산업 현장을 경험한 내가 제대로 입법을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근로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렇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는 안전업무만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사고 방지가 업무의 목표다. 근로자들도 산업 안전 관련 온·오프라인 교육을 많이 받는다. 일을 안해도 좋으니 안전교육부터 받으라는 게 회사 지침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법이라는데.
"안전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제품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근로자도 불안에 떨며 일해야 한다. 하지만 안전한 시스템이 갖춰지는 게 먼저다.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 다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근로자에게는 더 중요하다. 지금 사고가 나는 곳을 보면 대부분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영세한 업체다."
▶중소기업에 더 가혹한 법이라는 건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재가 발생하는 기업의 95%가 300인 미만이고, 76%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비슷한 기업과실치사법이 있는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28개 기업이 해당 법으로 처벌받았다. 모두 중소기업이었고, 이 가운데 58%가 파산했다.
▶'살인기업'은 없어져도 된다고 한다.
"없어져야 하는 것 맞다. 하지만 국가는 기업이 없어지지 않고 안전한 경영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처벌이 아닌 회사의 산재 예방 활동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이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위법 행위에 대한 규정이 추상적이다. 처벌 수위가 높고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입법 목적과 달리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존립마저 흔들 수 있다. 영세한 작은 기업들뿐 아니라 소상공인·자영업자까지 다 포함된다."
▶법인에 대한 처벌도 논란이다.
"법인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는 형사법상 원칙에 어긋난다. 또 영업정지나 취소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중처벌 문제가 있다."
▶대안이 있나.
"전문기술보유업체 인증제를 도입해 사업주가 안전 인증을 받은 업체에 관련 업무를 위탁할 때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방법이 있다. 인증업체는 대통령령으로 자격 조건과 규정을 정하면 된다. 제대로 된 안전관리 능력이 없는 영세업체를 적은 비용을 들여 이용하는 데서 사고가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충분한 계도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50인 미만 기업에 법 적용을 4년 유예하도록 한 걸 모든 기업으로 확대할 필요도 있다. "
▶피해 유가족과 정의당 의원들이 원안 통과를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건강이 정말 염려된다. 정의당과 유가족의 절박성을 이해한다. 하지만 법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하자, 하지 말자'에 방점을 둘 게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한다. 집권 여당으로서 완벽한 법을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