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더불어민주당이 당명에 ‘민주’를 왜 달고 있는지 모를 정권의 폭거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검찰총장 정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5·18 왜곡 처벌법 등 21세기 민주사회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80석을 ‘민주’당에 몰아준 국민도 이건 아닌데 하며 흔들린다. 그러나 소위 ‘대깨문’이라 불리는 집단의 충성심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런 맹목적 추종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역사는 잘 보여준다.
20세기에 대중의 열정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킨 지도자 가운데 간디와 처칠이 있다. 간디는 인도 민족주의운동의 지도자로, 처칠은 영제국의 열렬한 수호자로, 서로 앙숙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끈 팬덤 현상은 비슷했다. 유명한 ‘소금행진’에서 드러나듯이 대중의 지지를 촉발하는 간디의 능력은 놀라웠다. 간디는 그 어떤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보다 더 많은 대중을 더 깊숙이 흔들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는 문제점들이 돌출했는데, 특히 그가 제시한 정치적, 외적 자유와 정신적, 내적 자유가 충돌했다. 간디는 내적 자유 없는 외적 자유는 가치가 없다며 대중에게 먼저 정신적 갱생을 요구했다. 그 결과 민족운동의 정치적 활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국의 지배는 간디 없이도 끝났을 것이고 그가 없었다면 오히려 더 일찍 끝났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간디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을 화합시키지 못하고 결국 힌두 광신자의 손에 암살됐는데, 독립 후 인도는 그가 바라던 방향과 전혀 상관없는 길로 나아갔다.
처칠은 온 세상이 히틀러에게 굴복했을 때 결연히 자유세계를 이끌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다. 1933년에 정권을 잡은 히틀러가 온갖 도발을 일삼은 끝에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다음해 5월이 되면서 독일과 조약을 맺은 소련을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이 나치군에 짓밟혔고 남은 나라는 영국뿐이었다. 미국은 아직 구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여하지 않은 채 관망 중이었다. 꼬박 1년 동안 영국은 혼자 히틀러에게 대항해야 했는데 그때 처칠의 리더십은 놀라웠다.
그가 동원한 탁월한 무기는 심금을 울리는 연설이었다. 대포도 비행기도 부족했던 처칠은 ‘영어를 동원해서 전투에 내보냈다’. 그것이야말로 때로는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처칠의 연설은 국민이 그 힘든 시간을 ‘가장 멋진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기적을 낳았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한 날 사람들은 거리에 몰려나와 처칠에게 환호했다. 그런데 두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대중은 처칠을 배신하고 노동당에 압승을 안겨줬다.
간디와 처칠의 예에서 보듯 존경받고 경외받던 지도자도 한순간에 버림받을 수 있다. 아마 정치가들은 그런 대중의 속성을 알기에 더욱 팬덤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덤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달아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권력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권력이란 너무나 비이성적이어서 “눈을 가린 말이 마차를 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도자는 그런 권력욕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사회 내 갈등을 적절히 억제하고 화합시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일상이 돼버린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고, 내 편을 자극하고 흥분시켜 상대편을 공격하게 만드는 짓은 더더구나 해선 안 된다. 질투와 불만이라는 인간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사악한 감정을 악용한 대표적 인물이 히틀러였다.
“한쪽을 지지한 1400만 유권자가 모든 지혜와 미덕을 가졌고, 다른 쪽을 지지한 비슷한 수의 유권자가 전부 바보 멍청이에 악당일 리는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다정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서로를 무시하지 못해 안달인 정치가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처칠이 한 말이다. 얼마든지 다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국민을 이처럼 분열시켜놓고도 지도자라 자부할 수 있나. 지도자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포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간디나 처칠급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인물이라도 가질 수 있는 축복을 우리는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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