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10일(18:1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산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중공업그룹-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을 선정하면서 올초부터 이어져 온 두산그룹의 긴 구조조정 일정이 '9부능선'을 넘었다.
10일 두산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룹은 이날 오전 회의에서 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을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6%을 인수할 후보로 낙점했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이 지난 4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정부에 약속한 3조원 규모 자구안 이행 절차가 거의 마무리됐다.
◆두산그룹 숨가쁜 자구안 이행
두산그룹의 위기 원인은 두산중공업이다. 두산중공업이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는 두산건설이다. 일산 탄현 위브더제니스 등 미분양 단지가 늘어나면서 자금이 부족해지자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에 자금을 지원했다.
그런 가운데 두산중공업도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다. 석탄과 석유를 때는 화력발전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매출이 줄었고, 이익도 감소했다. 중요한 매출처 중 하나였던 원자력발전소 건설도 현 정부의 정책기조 변경으로 어려워졌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아직 돈이 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전인 작년 말부터 두산그룹은 올해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됐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법인(DICC)을 상장하는 문제를 두고 재무적 투자자(FI)들과 벌인 소송전 향방을 가늠할 수 없는 것도 그룹 전체를 짓누르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까지 닥치면서 두산그룹은 숨가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채권단의 압박도 거셌다. 두산중공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병행하면서도 인프라코어를 비롯한 핵심 자산 매각을 닦달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두산그룹은 당초 목표했던 이상으로 자구안을 달성해 가고 있다. 자구안의 핵심이었던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이 우협 선정으로 큰 가닥을 잡았다. 앞서 동박 및 전지박 업체 두산솔루스는 국내 사모펀드(PEF) 스카이레이크에 매각됐다. (주)두산이 가지고 있던 유압기기 사업부인 모트롤BG는 PEF 연합군인 소시어스-웰투시 컨소시엄에 팔렸다.
두산그룹의 상징으로 동대문 일대 랜드마크인 두산타워는 마스턴투자운용이 사갔다. 벤처캐피털(VC)인 네오플럭스는 신한금융지주 품에 안겼다. 두산건설은 대우산업개발과 매각 협상이 한동안 이어졌으나 현재는 일단 중단된 상태다.
'대주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취지에 따라 두산그룹 오너 일가도 나름대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소연료전지 관련 업체인 두산퓨얼셀 지분 23%를 두산중공업에 무상으로 증여했다. 두산퓨얼셀 주가가 올 들어 10배(3월27일 3934원 -> 12월10일 4만8900원)로 크게 올랐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희생'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11월 증여 시점을 기준으로 해당 지분의 가치는 6063억원에 달했다. 오너 일가로서는 큰 부담을 지지 않고 '할 도리'를 다할 수 있게 됐다.
두산그룹은 지난 9월 초 모트롤BG 매각과 퓨얼셀 지분 무상증여 등 다양한 구조조정 패키지를 종합적으로 발표하면서 두산중공업의 핵심 비즈니스를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정부의 다양한 에너지 정책과 맞물려 두산중공업의 이미지도 '부실투성이 거인'에서 미래 에너지원을 생산할 역량이 있는 회사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띠면서 최근 이뤄진 1조2125억원 규모 유상증자도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당초 3조원 규모 자구안을 추진했던 두산그룹으로서는 일부 핵심 사업부를 내어주긴 했지만 나름대로 실속을 챙기고 그룹을 재정비하는 데 성공한 한 해였다.
◆두산밥캣 매각 안할 가능성 높아져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두산그룹이 더 이상 핵심 사업부를 팔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올해 두산그룹의 가장 큰 수확은 '밥캣을 지킨 것'이라는 게 투자은행(IB)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두산그룹이 한참 어렵던 상반기만 해도 IB 업계에서는 밥캣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화력발전이 다시 늘어나기 어려운 가운데 원자력발전에 대한 정부 정책의 전환도 쉽지 않다는 등의 이유였다. 올해 자구안으로는 올해 돌아오는 채무를 갚기에도 빠듯하고, 내년에 상황이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물론 두산중공업이 내년에 다시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밥캣의 매각도 여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올해 두산그룹 구조조정 성과가 나쁘지 않다는 게 채권단 내부 분위기다. 지난 주 유상증자 청약에 투자자들이 대단히 호의적으로 참여한 것도 두산중공업으로서는 호재다. 밥캣을 팔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어서다.
가장 큰 고비였던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위해서는 두산인프라코어를 밥캣을 거느린 투자회사와 현 두산인프라코어 사업을 갖고 있는 사업회사로 분할해야 한다. 분할 후 두산밥캣을 거느린 투자회사는 두산중공업과 합병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각 회사마다 주주총회를 열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특히 DICC 소송 채무를 두산중공업이 떠안아주기로 하는 것에 대하여 일부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밥캣을 받아오는 과정에서 서로 상계 등으로 자연스럽게 해소 가능하다는 게 채권단 및 두산그룹의 생각이다.
이상은/차준호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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