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유를 만들던 직원들에게는 모두 큰 도전이었습니다.”
김선희 매일유업 사장은 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제29회 다산경영상 수상자(전문경영인 부문)로 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저출산 여파로 흔들리던 회사를 정상화시키고, 새로운 제품과 해외시장 개척으로 회사를 업계 수위로 끌어올리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식품 그 이상, 한국을 넘어(More than food, Beyond Korea)’라는 목표를 내걸고 식품과 유가공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견줄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가 함께 뛰었다”며 “‘매일 새로운 것을 묻고 답하라’는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기업 이념처럼 늘 새롭게 변화하는 회사가 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매일유업을 글로벌 시장에서 뒤지지 않는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1992년 제정된 이 상의 역대 수상자 중 여성 최초로 전문경영인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4년 사장 취임 후 매일유업에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반세기 동안 분유와 우유 중심으로 이뤄진 제품군을 건강식 등 신품목으로 확대하며 명실공히 종합식품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또 해외 시장 등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100세 시대에 걸맞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사회구조적 악재와 유가공업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매일유업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영업이익도 크게 개선됐다.
금융권에서 일하던 김 사장이 매일유업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김 회장과 함께 일본의 낙농업체들을 돌아보고 난 뒤였다. 그는 “매일유업이 고부가가치 식품산업으로 도약할 기반이 필요한 때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우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냈다. 성인 영양식 셀렉스, 유통기한이 긴 멸균우유, 프로틴이 함유된 아몬드브리즈, 컵커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바리스타룰스 등이 그런 아이디어에서 나온 신제품이다.
우유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김 사장은 작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리더십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육아 문제로 고충을 겪는 직원들을 위해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출산휴가를 적극 권장하는 등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만들기’에 앞장섰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는 바로 제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김 사장은 매일유업 광고 모델을 선정할 때도 국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인물을 찾는다. 김연아, 차범근, 박세리, 임영웅 등이 그 사례다. 그는 “US오픈 우승 당시 박세리 선수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라며 최근 셀렉스 모델로 박 선수를 발탁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중견 식품기업 경영자로서 과분한 상을 받았다”며 “일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상으로, 가문의 영광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앞으로 더 멋지게 성장할 여성 리더들에게 이번 수상이 조금이나마 응원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임직원이 본 김선희
"효율적인 업무 환경 만들어…세심한 어머니 리더십 감탄"
“직원들이 보고용 문서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대신 중요한 정보를 빨리 보고하지 않으면 혼납니다. 카톡(카카오톡) 보고도 스스럼없이 받습니다.”(고정수 홍보담당 이사)"효율적인 업무 환경 만들어…세심한 어머니 리더십 감탄"
“본인이 워킹맘으로서 회사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들만큼은 더 좋은 환경과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어요. 빈말이 아니었어요. 그 말이 현실이 됐습니다.”(박재랑 인사팀장)
김선희 매일유업 사장은 겉치레를 싫어하면서 실질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직원이든 고객이든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듣는다. 사내보고는 빠지지 않고 챙기고, 퇴근 전에 반드시 ‘고객의 소리(VOC)’를 확인한다. VOC는 회사 카카오톡 공식계정, 전화, 홈페이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돼 고객상담실을 거쳐 김 사장에게 ‘직보’된다.
박정숙 고객상담실장은 “고객을 위한 진정성이 없는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며 “어떤 메시지든 빠지지 않고 보고하라는 게 김 사장의 지시”라고 말했다. ‘분유를 외출해서도 편히 먹을 수 있게 액상으로 만들어달라’ ‘임신해서도 먹을 수 있는 디카페인 컵커피를 만들어달라’ ‘종이 우유팩에도 뚜껑을 달아달라’는 등의 요구가 실제 제품 개발로 이어졌다.
2018년 출시한 단백질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셀렉스’도 김 사장이 사내 보고와 정보 수집을 중요시한 결과물이다. 이규진 마케팅 매니저는 “단백질 제품이 헬스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헤비 유저’ 위주로만 출시돼 있는데 운동 초심자들도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사장이 제안했다”며 “마케팅 담당자도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짚어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리더십은 사내 구성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상헌 재경팀장은 ”업무 몰입도와 일에 대한 진정성이 직업인으로서 훌륭한 본보기”라며 “조직 못지않게 세심하게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했다.
김보라/박종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