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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토사구팽 신세가 된 화학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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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소재를 생산·소비하는 산업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2018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해버린 ‘화학물질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때문이다. 내년 말까지 1000t 이상 소비하는 1177종의 ‘기존물질’과 위험성이 큰 468종의 ‘신규물질’에 대한 유해성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해야만 한다. 품목당 20억원이라는 등록 비용도 벅차지만, 경직된 등록 제도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환경부가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정부의 야심 찬 ‘소부장 2.0’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정유공장의 탈황시설에서 생산되는 황(黃)은 화학산업의 필수소재다.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가장 많은 기본소재인 황산(黃酸) 제조에 사용되고, 자동차 타이어 등에 사용되는 가황(加黃) 고무 생산에도 필요하다. 비료·의약품·농약·생활화학용품 등 거의 모든 화학제품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약방의 감초 같은 소재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필수 영양소이기도 하다.

특유의 노란색 분말이나 덩어리로 소비하는 황은 인체나 환경에 특별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상적인 소재다. 현대적 화학 지식이 없었던 과거에도 흔히 사용하던 소재였다. 물에 잘 녹지도 않는 황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화산지대와 온천에 관광객이 몰리기도 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황이 연소될 때 만들어지는 황산화물과 일부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황화수소가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고, 환경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고운 황 분말을 지나치게 많이 흡입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황이 화평법의 등록대상이다. 환경부가 연간 1000t 이상 사용되는 ‘기존물질’로 분류해 놓았기 때문이다. 13가지 물리·화학적 특성, 유전·생식 독성과 발암성을 비롯한 16가지 인체 유해성, 어류·물벼룩·저서생물 만성독성 등 18가지 환경 유해성을 비롯해 모두 47가지를 평가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부가 화학물질의 특징과 유해성 확인의 현실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정해놓은 평가항목이다.

환경부가 맹목적으로 요구하는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인정되는 정교한 시험을 통해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원소 상태의 황은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독성학의 전통이 짧은 국내에서는 환경부가 요구하는 인체·환경 유해성 자료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 그렇다고 유럽연합(EU)이 이미 공개해 놓은 유해성 자료를 함부로 베껴서 쓸 수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규제 때문이다.

화평법에 따르면, 용매에 잘 녹지 않는 고분자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평가항목이 면제된다. 실제로 원소 상태로 존재하는 황의 동소체(同素體) 중에는 수많은 황이 고리 모양으로 연결된 고분자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황 분말에 들어 있는 고분자의 비율이 온도에 따라 심하게 변하기 때문에 환경부가 정해놓은 고분자 소재의 형식 요건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결국 황을 등록하려면 화학선진국의 유해성 분석 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공개된 유해성 정보를 환경부 형식으로 재작성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황에 대한 유해성 정보는 환경부가 EU의 협조를 얻으면 얼마든지 공짜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과학 정보다. 환경부가 기업에 무의미한 등록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낭비할 이유가 없는 비용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유해성 자료는 누출·폭발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유해성 자료 자체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고, 환경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도 산업안전관리법에 따라 기업에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제공해주고 있는 고용노동부를 배울 필요가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유해물질을 스크리닝하고,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에 필요한 정보를 생산·제공하는 미국과 일본의 정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산업현장에서의 유해물질 사용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화관법도 개정해야 한다. 산업현장의 안전을 핑계로 환경부의 몸집만 키우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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