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어떤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가리켜 ‘○○난민’이란 표현을 흔히 쓴다. 영어를 잘하고는 싶지만 못하는 사람을 ‘영어 난민’, 구혼을 열심히 했음에도 짝을 못 만난 사람을 ‘결혼 난민’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난민’ 중 가장 널리 정착한 것이 ‘쇼핑(買い物) 난민’이다. 고령화로 주요 거주지 공동화(空洞化)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소매점포가 급감한 탓에 생필품을 제대로 사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2000년대 초에는 경제난으로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을 비꼬는 ‘넷(net) 난민’이라는 용어가 회자됐다. 올초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와 화장지가 동났을 때는 ‘티슈 난민’ ‘마스크 난민’이란 신조어가 선을 보였다.
난민(難民)은 ‘인종·종교·정치적 이유에 따른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난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난민이 원뜻과 다른 의미로 일본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비슷한 시기, 일본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도 ‘○○난민’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전세 난민’‘이사 난민’이란 표현은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수다한 ‘○○난민’ 목록에 ‘충전 난민’이 새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정부의 독려로 13만 대에 달하는 전기차와 수소차가 보급됐지만, 충전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서 나온 말이다. 전기차 운전자들이 충전소를 찾아 헤매고, 5~6시간씩 충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이 초라한 행색으로 정처 없이 배회하는 난민과 크게 다를 바 없기에 적절한 작명이라는 느낌이다.
한국의 전기차 충전기 수(3만3000여 기)는 중국의 0.7%, 미국의 1.4%, 일본의 10.5%에 불과하다. 수소차 충전소는 서울에 단 세 곳뿐이다. 정부가 그린뉴딜을 내걸고 2025년까지 전기차 113만 대, 수소차 20만 대를 보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인프라 구축에는 이렇게나 손놓고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전기차를 사도 맘 놓고 운행하기 불안한 게 현실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고속성장 과정에서 일단 저질러 놓고 추후에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걸어왔다. 신도시에 아파트부터 지은 다음 교통망을 갖추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임기응변이 계속 통할 리 없다. 구호와 의욕만이 아니라 탄탄한 시스템이 목표를 달성하는 요체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미래차 구매자를 난민으로 만드는 식의 무책임한 탁상행정은 정말 곤란하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