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금주령 전 미국의 외식 산업은 철저히 성인 남성 위주였습니다. 그러나 금주령 이후 패밀리 레스토랑 등 가족 중심의 외식 산업으로 혁신이 이뤄졌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혁신 유통 모델이 등장할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과 커니가 웨비나 형식으로 공동 개최한 디지털 비즈니스 포럼(DBF)의 지난 26일 강연 ‘코로나19 이후 유통산업의 미래’에서 커니의 심현보 파트너는 이같이 강조했다.
심 파트너는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성장과 코로나19 사태로 ‘리테일 아포칼립스(소매업 대재앙)’가 온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리테일 아포칼립스는 오프라인 유통의 종말을 뜻한다. 아마존 등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급성장으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고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백화점들이다. 113년 전통의 미국 백화점 ‘니만 마커스’는 지난 5월 파산신청을 했다. JC페니, 체인 메이시스 등 미국의 다른 백화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심 파트너는 “핵심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경험을 제공한다면 사람들이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경험을 판매하는 것을 ‘경험 경제’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여기서의 경험은 지금까지 유통업체가 판매하던 상품·서비스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는 “서비스는 소비자가 서비스를 받는 동안에만 기억하지만, 경험은 그 이후에도 소비자에게 오랜 시간 기억될 만큼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험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 ‘경험 경제’의 유망주로 꼽히는 유통업체들을 예로 들었다. 미국 뉴욕에서 2011년 생겨난 편집숍 ‘스토리(STORY)’는 스스로를 유통업체가 아닌 매체로 정의한다. 이들은 매장에 상품을 단순히 진열하지 않는다. 상품에 엮인 이야기(story)를 발굴해 소비자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소개한다. 입점 업체들로부터 받는 돈도 ‘편집비용(editing fee)’이라고 소개한다.
매장은 주기적으로 확 달라진다. 소비자들이 지겨워하지 않도록 1~2달 간격으로 매장의 주제를 정해 장식과 상품도 싹 바꾼다. 소비자들은 매장에 갈 때마다 새로운 제품을 이해하고 발견할 수 있다. 입점업체들은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이득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정보기술(IT) 기기 편집숍 ‘베타(b8ta)’는 유통업체인 동시에 소비자 데이터 분석 업체다. 이들은 매장에서 IT 기기를 경험하는 소비자들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소비자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꼼꼼하게 수집한다. 그렇게 모은 데이터를 분석해 제품을 입점시킨 제조업체에 제공하고 값을 받는다. 2015년 설립된 이 업체는 약 5년 만에 매장을 23개로 늘렸다.
심 파트너는 “온라인에서 싸고 좋은 물건을 쉽게 사게 되자 오프라인 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인간은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 모두를 원하는 존재”라며 “소비자들이 ‘센세이션’으로 느낄 만한 경험을 제공하는 유통업체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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