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무관하게 노동계 요구 사항을 담은 과잉입법이 문제다.”
한국경제신문이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25일 개최한 긴급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이처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6일부터 노조법 개정안 심의에 착수하는데 노조 쪽으로 완전히 기울까 걱정된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최종석 한경 전문위원의 사회로 열린 토론회엔 김영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협력본부장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ILO 핵심협약 비준 찬성론자들이 유럽연합(EU)의 무역제재 가능성을 꼽아 조속한 비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전례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김영문 교수는 “ILO 협약 배경에는 노동권 희생의 대가로 얻어낸 저가 상품으로 경쟁 우위에 서는 방식 등으로 공정한 무역질서를 흔들어선 안 된다는 취지가 있다”며 “하지만 한국의 노동권은 이미 상품가격을 올려놓을 정도로 크게 보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강식 교수는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아 통상질서를 저해했다고 하면 구체적인 증거는 물론 입증 가능해야 한다”며 “노동권에 관한 문제로 일개 기업도 아닌 한 나라를 상대로 페널티를 준다는 것은 근거도 전례도 가능성도 없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물론 정부, 여당에서는 ILO 협약이 늦어지면 ‘노동 후진국’의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김영문 교수는 “한국은 이미 단결권 보장의 최첨단에 있는 나라”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법 규정만 놓고 보면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돼있지만, 현 정부 들어 대법원은 전속·비전속을 떠나 비근로자, 플랫폼노동 종사자에게까지 노조 가입의 문호를 열어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법 개정 없이 충분히 EU를 설득할 수 있음에도 정부가 ‘과잉입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문 교수는 노조의 단결권만 강조한 법 개정이 이미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도를 더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국제기준에 맞춰 공정한 노사관계 게임의 룰을 정한다면서 노조에는 단결권이라는 무기를 주고, 사용자에게는 대체근로 등 대항할 무기를 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조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실업·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사업장 주요 시설 점거 제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이다. 참석자들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금지한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ILO 협약 비준과 아무 관계없는 노동계 민원 처리”라고 질타했다. 김강식 교수는 “2010년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 도입은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이뤄진 노사 간 빅딜의 결과물”이라며 “그런 사안을 이제 와서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 해당 규정을 지우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노사관계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문 교수는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사용자로서는 돈 주고 뺨 맞고, 노조 입장에서는 돈 준 사람 뺨 때리는 격”이라고 했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을 개악으로 규정하고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사업장 주요 시설 점거를 제한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한 것은 경영계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황 본부장은 “단협 유효기간을 늘린다고 하지만 산업현장에선 매년 임단협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어 실효성 없는 방안”이라고 했다. 또 사업장 점거 제한에 대해서는 “최근 법원에서는 수술대 점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 로비 점거를 허용했는데, 상식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노조에 파업이나 시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꼭 점거를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