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 파산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항공산업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에 항공산업의 생존이 걸렸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정책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서 항공산업의 명운을 걸고 빅딜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집무실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100분 넘게 이어졌다.
▷‘재벌특혜 논란’과 ‘관치 구조조정’이라는 극단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모든 항공사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생존할 수 없다. 재벌에 지원한다고 무조건 특혜인가. 유일한 대안은 합병뿐이다.”
▷근거가 무엇인가.
“인수합병(M&A) 과정에선 자금 투입 최소화, 경영정상화 여부, 향후 상환 가능성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합병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냈다.”
▷통합경영 시뮬레이션을 했는가.
“연 3000억원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연 3% 금리로 10조원의 부채를 더 감내할 수 있는 재무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부채 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이 회장은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다.
“당시 최선의 방법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의 합병이었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국내 해운업도 붕괴됐다”는 설명이다.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항공업도 네트워크산업인 만큼 섣부른 파산 결정은 기간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판단이다.
이 회장의 별명은 ‘승부사’다. 숱한 구조조정 과정을 헤쳐오면서 얻은 ‘훈장’이다. 이번 승부의 1차 고비는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강성부 KCGI 대표가 이끄는 3자 연합이 법원에 신주 발행을 금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이다. 첫 법원 심문이 25일 열린다. 이르면 이번주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어떻게 되나.
“딜이 무산된다.”(산은은 합병의 첫 번째 단계로 다음달 초 5000억원 규모의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할 예정이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증자를 할 수 없다.)
▷그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긴급자금 투입이 무산된다. 연내 파산을 피할 수 없다. 항공산업 전체가 붕괴된다. 산은 회장직에 계속 있을 자격이 있는지도 고민 중이다.”
▷사전 검토를 했을 텐데.
“물론이다. 사전에 법률 검토도 했다. 강성부 대표의 주장은 명분이 없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
“책임있는 대주주라면 항공업의 미래를 위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 명분이 없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통합항공사의 부채만 23조원이다.
“23조원 빚더미 항공사가 과연 뜰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어쨌든 논란이 많은 딜이다.
“좋은 측면만 있다면 좌고우면할 필요도 없다. 부작용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의 문제다. 노동조합과 일부 시민단체가 막무가내로 합병에 반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 회장은 산은의 대한항공 국유화 논란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국유화 수순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10% 지분으로 경영을 좌지우지할 생각이 없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확실한 책임경영을 보장할 것이다.”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느냐.
“한진칼 지분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별도 기구를 두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기구가 주요 현안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고, 산은은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
▷왜 대한항공에 직접 돈을 넣지 않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대한항공에 2조원을 넣어 아시아나를 인수하게 하면 대한항공은 곧바로 산은 소유가 된다. 그러면 바로 국유화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왜 그런가.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율이 20% 밑으로 떨어져 지주회사법을 위반하게 된다. KCGI 역시 대한항공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돼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무엇보다 정부가 항공사 경영권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회장은 한진칼에 대한 자금 지원이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네버엔딩 스토리”라며 “양측의 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인터뷰 내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산은과 한진그룹뿐 아니라 정부도 약속한 사항”이라며 “산은을 믿고 불안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대한항공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산은과 맺은 투자합의 위반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제기한 의결권 공동행사 사전 약속 의혹에 대해 “일체의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통합항공사의 관건은 산은 지원과 함께 조원태 회장의 경영능력이다. 이에 관한 질문에 이 회장은 잠깐 침묵한 채 말을 아꼈다. 이어 “조 회장의 역량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 화물 영업에 집중하는 등 경영능력과 리더십 역량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조 회장도 많은 걸 걸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회장은 대한항공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윌셔그랜드센터 등 대한항공이 보유한 자산을 정리해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 회장은 “회사를 살리려고 한다면 항공업과 관계없는 불요불급한 자산은 원칙적으로 정리하는 게 맞다”며 “대한항공이 알아서 정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GM노조…파업은 자해행위"
철수명분 줄 뿐…노조도 선 지켜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국GM 노조의 파업에 대해 “자해행위”라며 “미국 GM 본사에 철수할 명분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GM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계속된 노조의 부분 파업 및 잔업·특근 거부로 생산차질 물량이 2만 대에 이른다. 노조는 월 기본급 약 12만원 인상, 성과급 2000만원 이상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철수명분 줄 뿐…노조도 선 지켜야
이 회장은 “평균 연봉 1억1000만원을 받는 노조원들이 성과급을 더 달라고 파업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GM 본사가 철수한다면 산은도 막을 명분이 없다고 했다. 앞서 GM과 산은은 지난해 5월 총 43억5000만달러의 신규 자금을 한국GM에 투입하기로 하는 경영정상화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GM은 신차 배정을 통해 한국GM의 생산시설을 10년 이상 유지하고, 산은은 GM의 한국 시장 철수를 막을 비토권을 보유했다. 이 회장은 “노조 파업으로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GM이 철수한다고 하면 산은 답변도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며 “철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대한민국 경제는 노조가 망쳤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며 “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노조가 지역경제와 정부와 산은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격”이라며 “노조도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민/임현우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