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자 한 시멘트업체 대표가 내놓은 반응이다. 탄소중립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것. 급격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잇달아 추진을 선언하자 한국도 동참했다. 그는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지 않는 이상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며 “이대로라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철강 유화 시멘트 ‘초비상’
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으로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국내 산업계의 탄소 배출량은 2018년 기준 4억500만t(에너지 부문 포함)으로 한국 전체 배출량의 55.7%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앞으로 매년 1350만t씩 줄여야 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380만t인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규모의 사업장이 매년 하나씩 문을 닫아야 달성 가능한 목표다.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2050년 탄소중립은 사실상 기업들에 문을 닫든지 오프쇼어링(해외 이전) 하라는 얘기와 같다”고 진단했다. 산업연구원은 2050년 탄소중립에 따라 제조업 부문 생산은 최대 44%, 고용은 최대 134만 명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업종별로는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1억500만t) 석유화학(5800만t) 시멘트(3600만t) 정유(3000만t) 반도체(1700만t) 디스플레이(1200만t) 자동차(450만t) 업계 등의 걱정이 크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의 업종은 유연탄, 나프타, 석회석 등 원료를 아예 바꿔야 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공정 단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게다가 석유 석탄 등 전통 에너지를 쓰지 않고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2018년 996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수송 부문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기준 2400만 대에 달하는 자동차가 모두 전기차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친환경차 비중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전기차 가격, 턱없이 부족한 충전소 등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업계 의견 구해야”
기업들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8.9%(135만1000t) 줄였다.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불소화가스 감축 설비를 운영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렸다. 현대자동차는 2018년 대비 지난해 생산 차량을 4만 대가량 늘렸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울산공장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구축하는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린 덕분이다. 전기차 수소차 판매도 늘리고 있다.그럼에도 온실가스 감축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감축 기술을 적용해서 줄일 수 있는 배출량이 연간 1만t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탄소중립을 가장 먼저 선언한 유럽연합(EU)을 좇아가는 식으로 같은 목표를 던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한국 제조업은 대부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글로벌 제조업에서 위상이 약화된 EU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목표만 있을 뿐 전략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경덕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기본적인 비용 추계도, 환경성 평가도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만 좇다가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와의 충분한 협의도 필요하다.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앞서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검토안을 마련하고 탄소 중립을 선언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도 요구된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효율 중심 기술에서 탈탄소 중심의 파괴적 기술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원가 상승, 매몰 비용, 고용 절벽 등에 대한 대형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