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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핫바지 외교'와 '김칫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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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닢 주고 집을 사고, 천 냥 주고 이웃을 산다.” “이웃집은 바꿔도 이웃나라는 바꿀 수 없다.” 개인이나 국가 간 선린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 현실로서는 미·일·중·러의 ‘4강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핵심 축의 하나가 한·미 동맹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최근 미국행(行)을 두고 말이 많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쪽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것과 관련해 “곧 물러날 ‘핫바지 장관’과 뭘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폼페이오는 지난달 일본과 동남아 방문 때 한국을 건너뛰었다.

강 장관은 새 대통령 쪽 인사들과도 만난다고 했지만, 이 또한 신정부 출범 전 외국 관계자 접촉금지령이 내려진 상태여서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 차례 만남을 실패로 규정한 마당에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외교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정부 여당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습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새 그림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사람이라 궁합이 잘 맞는다”거나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고, 대북 특사도 파견하자”는 등의 말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동안 ‘김칫국 외교’로 낭패를 본 사례가 많다. 지난 4월에도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잠정 타결됐다”고 섣불리 발표했다가 역공을 당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김칫국 마시다’는 문장을 리트윗하면서 ‘알이 부화하기 전 닭을 세다(to count one’s chickens before they hatch)’라는 영문 설명까지 덧붙였다.

정부는 2년 전 9·19 남북 군사합의 때 이를 ‘사실상 불가침 합의’라고 단언하고, 지난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기 직전까지 ‘합의문 서명’을 강조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논란에서도 미숙한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변수까지 감안해서 냉철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고려 때 서희 장군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강동 6주까지 되찾은 것은 국제정세를 면밀히 분석하고 상대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어 본 덕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의 외교 역량은 탁월한 국제감각과 협상력의 총합이다. 국립외교원 뜰에 동상으로 서 있는 서희라면 지금 어떻게 할까. ‘세 닢으로 이웃을 살 수 있는 지혜’까지 알 듯한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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