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무력으로 가장 앞서는 미국 군대는 자국 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경우 미 육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수 개월 전부터 트럼프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해 “백악관에서 끌어낼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바이든은 지난 6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지고도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경우 군대가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일 발표한 성명에선 “미 정부는 백악관에서 무단 침입자를 데리고 나올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후보가 승리를 최종 확정지을 경우 공식 취임은 내년 1월 20일 정오(12시) 이뤄진다. 이 시간 이후엔 트럼프를 무단 침입자에 준해 대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내 여론은 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민주당 대선 후보 모두 승복과 불복의 갈림길에서 승복을 택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폴 쿼크 정치학과 교수는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어느 순간 법 집행기관은 한 쪽 손을 들어줘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헙법은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권력을 넘겨주지 않을 경우의 구체적 절차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수정헌법은 20조에서 대통령 권한이 1월 20일 당선자에게 이양된다고 명시했다. 군 통수권 등 모든 권한이 새 대통령에 자동으로 넘어간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현재 미국 군(軍)은 정치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미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문제에 있어 군대는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와 법원이 우선 나서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군의 개입을 요구하는 건 당선자의 몫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카도조 로스쿨의 데보라 펄스타인 헌법학과 교수는 “백악관을 비우기 위해 어떤 연방군을 사용할 지 바이든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슈아 샌드먼 뉴헤이븐대 교수(정치과학)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경우 대통령 유산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현실화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우선 의회가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트럼프는 불복 수순을 밟고 있다. 바이든 당선 확정 보도를 접한 뒤 “이번 선거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며 “바이든은 거짓으로 승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끝까지 버틸 경우 백악관 경호국(시크릿 서비스)이 마지막날 밖으로 내보내거나, 미 군대 또는 연방수사국(FBI)이 나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의 불복 움직임에 따라 바이든의 정권 인수 작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바이든 진영은 올 여름부터 인수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해 왔다. 취임 직후 내릴 수 있는 행정명령과 관련한 정책 시행 방안이나 인선안 등을 검토해 왔다.
정치 매체인 폴리티코는 “대선이 순조롭게 끝나도 4000명이 넘는 정무직 임명자들로 채워진 정부를 재구성하는 데 취임식까지 시간이 빠듯하다”며 “당선인 확정이 지연돼 시간이 더 촉박해졌다”고 전했다.
한편 바이든은 올 3월부터 민주당 대선 후보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부터 백악관 경호국의 경호를 받아왔다. 선거 기간부터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와 배우자에게 경호를 제공하는 것은 1968년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 이후부터 시행돼 왔다. 로버트 케네디는 1963년 암살됐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