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역 대형 건설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방침을 잇따라 밝히고 있다. 부산·경남(PK) 지역에서는 부산 경부선 지하화와 ‘문현 벤처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의 예타 면제를 약속한 데 이어 전북·전남에서는 ‘고속철도(KTX) 전라선’에 대한 예타 면제를 시사했다. 한국판 뉴딜 사업에서 지역형 뉴딜 사업이 추가되면서 예타 면제 사업은 줄줄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지역 뉴딜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성 평가를 대거 생략한 채 ‘국민 혈세’를 동원해 선심성 토건정책을 추진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성 없는 사업에 국민연금 동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30일 광주시의회, 전북 부안군청 등에서 열린 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예전에 없을 정도의 대규모 예타 면제를 했지만 사업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아서 주민들은 실감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지역균형발전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왔다”고 밝혔다. 특히 KTX 전라선과 관련해 “전남과 전북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며 예타 면제 방침을 시사했다. 이 대표는 또 “연기금을 지역 뉴딜을 포함한 균형발전에 활용하는 방안을 정교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정부는 지난해 1월 지역별로 총 사업비 24조원 규모의 23개 대규모 공공 사업을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했다. 이에 더해 이 대표는 추가 예타 면제와 연기금 투입 등으로 민심에 보다 어필할 만한 지역 사업을 발굴·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KTX 전라선은 해당 지역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예타 면제 목소리가 나왔다. 김회재 민주당 의원(여수을)은 지난 23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KTX 호남선은 개통 전 662만 명이 탑승하다가 고속철이 건설되고 나니 작년 한 해 1735만 명이 이용하는 만큼 경제성으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며 KTX 전라선에 대한 예타 면제를 주장했다. 이 대표가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한 내용과 같은 취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혹시라도 예타 면제로 경제성도 모르는 사업에 국민연금을 투입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역 뉴딜, 대거 예타 면제받나
민주당은 PK 등 다른 지역에서도 대형 건설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부산시당은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부산 경부선 지하화와 문현 벤처컨벤션센터 건설 사업에 대한 당 차원의 예타 면제 방침을 전하며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당력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경부선 지하화는 부산 구포~사상~부산진역 16.5㎞ 구간을 지하화하는 사업이다. 문현 벤처컨벤션센터는 부산 문현동에 지역 내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플랫폼 공간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민주당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인 이광재 의원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부선 지하화 등은 한국판 뉴딜과 관련한 지역형 뉴딜 사업으로서 예타를 면제하는 것”이라며 “추가로 다른 지역 사업들도 면제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투자액 160조원의 47%에 달하는 75조3000억원을 지역균형 뉴딜에 투입할 예정이다. 현재 130개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지역형 뉴딜 사업을 구상 또는 시행 중이어서 대거 예타 면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경제성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셈이다.
하위직 공무원 지방할당제도 검토
민주당은 예타 면제 사업에 더해 하위직 공무원 지방 할당제 등 지방 우대 정책을 통해 표심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이날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하위직 공무원 지방 할당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몇 년 후부터 실시한다는 조건”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혁신도시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대표는 “전국 10곳의 혁신도시에 입주해 있는 공공기관은 그 지방에 있는 대학 출신자를 일정 비율로 이미 뽑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 30% 선발을 목표로 하는 데 더 얹어서 20% 정도를 다른 지역의 지방대 출신으로 뽑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하자면 전북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전남) 한국전력에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또 “지방 활성화를 위해 기업 유치가 관건”이라며 “수도권에서 아주 먼 곳이라면 법인세를 아예 안 받는 방안을 포함해 수도권으로부터 얼마나 먼가에 따른 차등적 세제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