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에서 시체가 주술을 받고 살아나 선량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서구권 영화에선 좀비, 중화권 영화에선 강시가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기업 중에서도 좀비나 강시에 비유되는 곳이 있다. 재무구조가 망가져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기업, 이런 회사를 ‘한계기업’이라고 부른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한계기업의 동의어로 ‘좀비기업’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한계기업의 특성이 좀비와 딱 들어맞는 데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한계기업 판단 기준은 이자보상비율
정상적인 기업과 한계기업을 구분하는 기준은 ‘빚을 잘 갚고 있느냐’다.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이면 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 이자보상비율이란 기업의 1년치 영업이익을 그해 상환해야 할 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이다. 이 값이 100%를 밑돈다면 사업해서 번 돈으로 은행에서 빌린 채무의 이자조차 갚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를 3년 동안 벗어나지 못한 기업은 경쟁력이 상당히 훼손됐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원칙대로라면 한계기업은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것이 맞다. ‘망할 기업은 망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부나 채권단(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지원으로 파산만 면하고 간신히 연명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실책이 반복되면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 큰 기업은 부실해져도 정부가 어떻게든 살려준다는 의미다.
문제는 좀비가 사람을 해치듯 좀비기업도 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정상적인 기업이 투자를 집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길을 가로막게 된다. 좀비기업에 빌려준 돈은 떼이기 쉽다는 점에서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1990년대 일본은 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좀비기업이 속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경제 충격을 걱정해 한계기업을 과감히 정리하지 못했다. 결국 은행이 망가지고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져드는 한 원인이 됐다.
“코로나 여파로 좀비기업 폭증 우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한계기업은 얼마나 많이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자산총액 500억원 이상 기업 중 한계기업의 비중을 따져본 결과, 한국은 지난해 기준 17.9%로 조사 대상 24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았다. OECD 평균 한계기업 비중(12.4%)을 5.5%포인트 웃돌았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국내 기업은 36.6%로 집계됐다. 2017년 32.3%, 2018년 35.2%에서 더 늘어나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9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이들 업체가 모두 한계기업으로 전락하진 않겠지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해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 기업의 비중이 47.7~50.5%로 치솟을 수도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전망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코로나 사태로 한계기업이 폭증할 우려가 크다”며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한계에 다다른 기업들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도 사람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는다. 경영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1935년 90년이던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75년 30년, 2015년에는 15년 안팎으로 짧아졌다고 분석했다. 기술 혁신은 갈수록 빨라지고, 경쟁은 치열해지는 시장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