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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상속세 제로' 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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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상속세 제로' 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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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대법의 뿌리인 로마법이 다룬 핵심 대상은 상속이었다. 수다한 상속 분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리가 정교해졌다. 상속인 지정 문제로 불거진 ‘쿠리우스 송사’를 거치면서 법학에선 유언 해석의 양대 축인 ‘의사(意思)주의’와 ‘문언(文言)주의’가 나뉘었다.

상속이 중시된 것은 로마인들이 사유재산에 큰 의미를 뒀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로마인에게 재산은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핵심 가치였다. 재산이 있기에 로마 시민은 노예나 동물과 구별됐다.

재산은 가족과도 불가분의 관계였다. 가족을 지칭하는 ‘파밀리아’는 로마법상 재산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가족 재산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면 가족에서 분리될 수 없었다. 당연히 가족 구성원에게 이뤄진 상속엔 세금도 없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도입된 ‘20분의 1세(稅)’는 유언에 따라 가족 이외의 사람이 재산을 물려받을 경우, 상속재산의 5%를 내게 한 예외규정이었을 따름이다.

로마인들이 이처럼 상속을 철저하게 보호한 덕에 로마는 부(富)를 유지하고 확대해 나갈 토대를 갖췄다. 로마가 오랫동안 대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상속권의 보장이 주목 받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근대 동양에선 국가가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상속세를 동원했다. 러·일 전쟁 중 일본은 군비조달을 위해 1905년 전격적으로 상속세를 도입했다. 담배·소금에 대한 전매 및 영업세, 주세, 등록세, 인지세 등과 함께 급히 만들어졌다. 사유재산 보호가 사회의 부를 어떻게 키우는가에 대한 고려를 할 여유가 없었다. 일본의 법 제도를 바탕으로 조선상속세령(1934년), 상속세법(1950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1996년) 등 관련 법규를 적용해온 한국에서도 상속세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제대로 이뤄졌을 리 만무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타계에 따른 11조원 규모 상속세 부과를 계기로 뒤늦게나마 ‘징벌적 상속세’를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상속세 규모뿐 아니라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스웨덴 호주 캐나다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고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경쟁적으로 상속세율을 낮추는 추세도 이런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가들이 부를 축적할 의욕을 꺾고 기업의 존립마저 위협한다. 상속을 평생 성실한 노력의 결과로써 보장해 사회 발전의 발판으로 삼은 로마인의 지혜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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