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시인인 황인숙 시인은 40년 가까이 서울 용산동 해방촌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며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산문집 《우다다, 삼냥이》(오픈하우스), 《해방촌 고양이》(이숲), 장편소설 《도둑괭이 공주》(문학동네) 등을 통해 고양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 왔다.
황 시인이 7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에서도 해방촌 옥탑방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며 느낀 삶의 기류를 짧은 글로 풀어냈다.
1부는 황 시인이 해방촌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은 일상을 담았다. 시인에게 한 이웃이 “아까부터 언니 주려고 기다렸어”라며 삶은 달걀을 불쑥 내민다. 한 노인은 지나가던 시인을 불러세워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시인은 “해방촌 사람들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여전하고 태연하다”고 말한다.
2부에선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으로서 경험한 일을 적었다. 그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뒤 스스로 착해지고 순해졌고, 못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고양이를 보호하면서 참을성도 깊어졌다고 했다. 거처 없이 돌아다니는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쓰다가도 별수 없이 마음을 거둬야 하는 일들을 기록하며 시인은 “삶에 겹겹이 붙은 거친 때와 같은 것들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가 담아내는 시선들은 지나친 감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시인 특유의 명랑한 분위기를 지킨다.
3부에선 나이듦을 깊이 사유한다. “청년과 노년 어디쯤을 살아간다”는 시인의 성찰이 깊은 울림을 안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을 무르익힌다는 것이다. 삶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깊은 삶은 기품 있는 삶이다. 삶이 깊어지면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된다.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 그 기품, 이것이 아름다움 아닌가.”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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