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집 뒤편의 숲에서 부엉이들이 울어댄다. 숲은 보이지도 않고, 부엉이는 몇 마리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 부엉이는 깃털이 매우 섬세해서 움직일 때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낮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으니 직접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시각이 제 기능을 못 하니 다른 감각이 곤두선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마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숲의 밤 풍경을 화가 장재민(36)이 커다란 화폭에 담아냈다. 가로 259㎝, 세로 194㎝의 대작 ‘부엉이 숲’이다. 그는 “매일 밤 겪었던 청각 경험을 때론 숨기고 때론 드러내며 만든 작품”이라며 “부엉이 여섯 마리가 그림 속에 숨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부엉이를 찾기는 어렵다. 그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분위기와 정서 등을 자신의 감성과 주관으로 걸러내 담아낸다. 원근과 구체적 형상은 중요하지 않다. 멀리서 본 풍경이지만 스스로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 주관과 객관, 대상과 주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섞어버린다. 점성이 높은 물감을 꾹꾹 짜내 큰 붓으로 힘차게 그려낸 그림들은 그래서 반추상의 풍경이 된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재민 개인전 ‘부엉이 숲’은 그의 이런 풍경화를 볼 수 있는 자리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모르비앙과 충남 천안의 레지던시(입주창작공간)에서 작업한 회화 24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낯선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겪은 낯선 경험을 에너지 삼아 작업한 그림들”이라며 “내가 그 낯선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의 쇠소깍에서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나룻배’를 비롯해 ‘타원들’ ‘송어’ 등 물과 관련한 소재의 작품이 여럿이다. ‘서낭당 나무와 돌장승’ ‘밤의 조각상’ ‘장승들’ ‘나무 유령’ 등 초자연성에 대한 관심도 크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나룻배’를 탄 사람들의 형상은 풍경과 합일돼 지워져 있다. 서귀포 해안 절벽의 바위를 그린 ‘바위의 온도’에는 사람 하나가 절벽 아래에 보일듯 말듯 서 있다. 작가 자신이다.
장재민은 미술계가 주목하는 청년 작가다. 첫 개인전을 연 2014년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가 된 데 이어 이듬해 ‘종근당 예술지상 2015’, 금호 영아티스트, 포스코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에 잇달아 선정됐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