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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의 21세기 아라비안나이트] 이슬람 영묘(靈廟) 문화, 수니·시아 종파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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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쿠웨이트 국왕이 사망하자 그의 조촐한 장례식과 공동묘지에 묻힌 소박한 흙무덤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14년 절대왕정 최고 통치자의 장례치고는 너무나 의외였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도 그랬다.

아랍 산유국 국왕들의 죽음에 대한 겸허한 정신과 상례의 단순함을 칭송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도 잇따랐다. 제법 근사한 비교 설명까지 곁들였다. 수니파의 장례와 시아파의 그것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전체 이슬람의 90%에 해당하는 수니파에서는 무덤을 꾸미거나 영묘 문화가 부재한데, 시아파에서는 이맘이나 지도자의 죽음을 화려한 거대 묘당으로 기억하고 기념한다는 것이었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만 보면 얼핏 그런 측면이 있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슬람 영묘 건축물만 보더라도 인도의 타지마할과 후마윤 영묘, 우즈베키스탄의 사만조 이스마일 영묘와 티무르 영묘, 이란 술타니예에 있는 일한 시대 울자이투 영묘, 파키스탄 서부의 50만 기에 달하는 이슬람 묘지도시 막클리 등은 모두 수니파 유산이다. 수니파 종주국인 오스만제국 시대에 지어진 이스탄불에 산재한 수십 개의 거대한 영묘도 시아파와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웅장한 영묘 건축예술은 시아파 전통이라기보다는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 전통을 이슬람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이 근엄하고 원론적인 아라비아반도를 벗어나 비아랍권인 이란이나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피정복지 문화였던 샤머니즘과 조상 숭배의식을 결합해 독특한 영묘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이슬람 정신에 따라 두 가지 원칙만은 고수했다. 우상숭배 금지 율법에 따라 고인을 형상화하지 않는다는 것과 시신과 참배객을 직접 조우하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타지마할이나 티무르 영묘 등을 방문하면 진짜 관은 지하에 두고, 방문객들은 지상에 공개된 가묘를 보고 가는 것이다.

이슬람 계시 초기 무함마드는 고인을 떠나보낼 때 울부짖거나 불필요한 허례를 막고 조용히 기도하며 빨리 알라의 곁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설파했다. 특히 나무나 돌 같은 무덤 축조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도 힘들었던 아라비아의 오아시스에서는 부패하기 전에 빨리 모래 속에 정성껏 묻어 주고 유목민들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가야 했다. 그러나 도시정주가 확연하게 정립된 이란, 터키, 중앙아시아 등지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달랐다. 아무리 예언자의 종교적 가르침이 지엄해도 주민들은 조상을 기리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영험 있는 학자나 통치자의 묘당에 찾아와서 기도하고 치성을 드렸다. 천국의 영생과 이생의 기억 모두를 움켜쥐려고 했던 통치자들의 이름 남기기도 영묘 문화를 부추긴 배경이 됐을 것이다.

이슬람에서 죽음은 이생의 번뇌와 고통을 떠나 영원한 천국으로 향하는 새출발이다. 따라서 죽음이 확인된 순간 가장 빠른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또 내세에서의 영생은 육체와 영혼이 동시에 부활해 즐기는 삶이다. 무슬림들이 화장을 기피하는 이유다. 물론 내세에서 주어지는 육신은 새로운 것이겠지만, 죽은 자의 몸을 수습하려는 유족들의 집착이 강한 편이다. 자신의 신체를 해체하는 자살폭탄 공격이 이슬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슬람에서 금기시되는 죽음의 형태인 것이다. 동시에 적의 공격으로 훼손된 주검 앞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다른 문화권보다도 더 강하게 분노하고 피의 복수를 다짐하기도 한다.

이슬람 장례의 가장 큰 특징은 관을 운반 도구로만 사용하고 시신을 하얀 천에 싸서 그대로 흙에 묻는다는 점이다. 얼굴은 메카로 향하게 해 신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고는 의례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이 번갈아 운구하면서 각자 고인과의 개별적인 이별 의식을 갖는다. 그 과정을 통해 그동안의 오해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채권, 채무관계를 스스로 정리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인으로 인해 새로운 조건에서 훨씬 화목한 공동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고인이 준 최고의 선물이고 이슬람 장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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