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아침에 김지영이 옷을 삶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 방의 장난감을 정리하는 사이 아침 해는 어느새 노을이 된다. 아이를 씻기는 동안 남편이 퇴근한다. 지영은 곧바로 저녁 밥상을 차린다. 지영이 온종일 한 집안일의 가치는 얼마일까.
전통 경제학은 돌봄, 청소 등 가사노동의 가치를 무시해왔다. 가사노동은 시장 거래를 위한 생산이 아니어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전업주부는 취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가사노동이 ‘보이지 않는 노동’ ‘그림자 노동’으로 폄하돼 불린 이유다. 하지만 가사노동의 가치를 배제한 지표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가령 전업주부인 지영이 취업해 가사도우미와 베이비시터에게 비용을 지급하면 이전에는 제외되던 가사노동의 가치가 GDP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 가사노동의 ‘긍정적 외부효과’가 폄하된다는 측면도 있다. ‘돌봄 경제’를 다룬 책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는 “양질의 돌봄은 돌봄을 받는 당사자 외에도 많은 사람에게 여러 이득을 준다”며 “행복하고 건강하고 성공한 자녀를 기르는 부모는 중요한 공공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1985년 유엔은 “여성의 무급노동 기여는 국민계정과 경제통계 등에 반영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통계청은 2018년 처음으로 ‘가계생산 위성계정 개발 결과’를 발표하고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추산한 결과를 내놨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2014년 기준 연간 360조7000억원으로 명목GDP의 24.3%를 차지했다. 성별로 보면 1인 기준 남자의 가사노동 경제적 가치는 연 346만8000원, 여자는 1076만9000원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그만큼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랜 시간 가사노동을 부담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2019년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2019~2023년)을 내놓으면서 돌봄 경제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가사노동의 영역이었던 노인·장애인·아동 등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늘려 관련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로 만들어 경제적 가치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연구원은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는 여성들의 지위 향상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공공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