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다. 현대차그룹의 변화와 혁신을 진두지휘하고, 각 계열사의 실적과 성과를 책임지기 위해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14일 이사회를 열어 정 수석부회장을 신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해왔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올라도 업무 범위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그룹 체질개선 및 사업구조 재편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수석부회장은 친환경자동차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장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기업문화와 관련해선 '정보기술(IT) 기업보다 더 IT 기업처럼 변해야 한다'는 게 정 수석부회장의 지론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한 이후 현대차그룹은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대기업이 됐다"며 "회장직에 오르면 지난 2년간 변화보다 더욱 극적인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맡으면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업 영역이 확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양재 본사에서 연 직원과 타운홀미팅에서 "우리는 단순히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스마트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이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래 이동수단 전반을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이다.
올해 초 미국 CES 2020에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타운홀미팅 당시 "현대차의 사업비중은 50%가 자동차, 30%가 UAM, 20%가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기자동차와 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등도 정 수석부회장이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다.
기업문화 개선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2년간 복장자율화와 직급 간소화, 대면보고 문화 개선, 수시 채용 및 인사 시행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재계에서 "기업문화가 보수적인 현대차그룹이 지난 2년간은 변화 속도가 가장 빨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외부인재 수혈 및 글로벌 기업과 협업의 빈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은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삼성 출신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사장),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UAM 사업부장(부사장) 등 국내외 인재들을 직접 영입했다. 지난 3월 글로벌 빅3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 앱티브와 각각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해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하는 등 타 기업과 협업도 확대하는 중이다. 올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4대그룹 총수를 모두 만나 미래차 배터리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승진을 계기로 2018년 추진하다 멈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말 대대적인 사장단 교체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1970년생인 정 수석부회장은 19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하면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유학길에 올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고, 1999년 현대차에 다시 입사했다.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 상무,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등을 거쳐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기아차의 디자인을 대폭 바꿔 'K시리즈'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2009년 현대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2018년 그룹 수석부회장에 올랐다. 올해부터 그룹 최대 계열사인 현대차 이사회 의장을 맡는 등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