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경매이론에 관해 연구한 로버트 윌슨(83), 폴 밀그럼(72)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은 경매이론을 개발·발전시켜 라디오 주파수 같은 공공재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새로운 매각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시장 참여자의 이익은 물론 사회적 후생을 늘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2일 윌슨 교수와 밀그럼 교수를 2020년 제52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 배경에 대해 “두 경제학자는 경매이론을 개선하고 향상시켰다”며 “팔기 어려운 라디오 주파수 등의 상품을 순조롭게 매각하는 방안을 설계해 세계 매수·매도자, 납세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두 경제학자가 발전시킨 경매이론은 미시경제학에 속하는 게임이론의 한 종류다.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동시에 매각자도 적절한 이익을 얻는 매각 전략을 제안한다. 경매시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비롯한 여러 변수를 고려해 어떻게 매각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를 주로 연구한다.
두 교수는 경매의 이론적 바탕을 체계화한 것은 물론이고 이론을 실생활에 접목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특히 공공자산 매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보유한 주파수를 비롯한 공공재는 매각이 쉽지 않은 데다 적정 매각가를 도출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자칫 특혜 매각 시비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개발한 경매이론을 적용하면서 공공재 매각은 ‘신기원’이 열렸다. 1993년 이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두 경제학자가 제안한 경매제도(다중라운드 오름 경매제도)를 받아들여 100여 개의 방송 주파수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계기로 다른 정부들도 방송통신용 주파수 등을 경매이론을 통해 매각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주파수 매각으로 국가 살림살이가 개선되는 동시에 국민도 납부하는 세금을 줄이는 효과를 얻었다. 한국도 2011년 주파수 경매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다섯 차례 주파수 경매를 했다. 2018년 6월 시행된 5세대(5G) 주파수 매각이 다섯 번째로 진행한 경매다.
환경오염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역시 이들의 경매이론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기업들이 경매 형태의 배출권 거래를 통해 환경오염을 막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더 효율적으로 분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전병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파수 매각은 물론 유전 시추권 등을 경매로 매각하는 방식을 고안하는 등 다양한 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을 했다”며 “공정성을 높이고 시장 참여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경매시장을 설계하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경매이론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주도한 인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손색없다”고 말했다.
윌슨 교수와 밀그럼 교수는 스탠퍼드대 지도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경매이론의 기틀을 다졌다. 윌슨 교수는 1937년 미국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1964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다.
밀그럼 교수는 1948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미시간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이후 메트로폴리탄보험사 등에서 계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스탠퍼드대에서 1978년 통계학 석사, 1979년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7년부터 스탠퍼드대 교수로 근무했다.
국내 학자 가운데 왕규호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와 최연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스탠퍼드대에서 이들의 강의를 들었다. 왕 교수는 “밀그럼 교수는 어려운 이론을 쉽게 풀어내는 등 깔끔한 강의로 유명했다”며 “윌슨 교수는 학문적 통찰력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익환/강진규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