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연구개발(R&D)엔 아낌없이 투자하도록 했다. 인공지능(AI)과 5G(5세대) 통신망, 양자역학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도 상당 부분 초점을 맞췄다.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 부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조달할 능력을 키우는 데 행정부가 조력을 제공해야 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의회에 보고하라는 조항도 담았다. 민주당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계기로 친(親)기업 행보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진보 美민주당도 "기업 지원"
감세정책을 선호할 뿐 정부 주도 산업에 예산 투입을 꺼려온 공화당도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다. 중국에 하나씩 내주고 있는 제조업 일자리를 더 늦기 전에 되찾아 와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한몫하고 있다. 제임스 리시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당 법안에 대해 “중국에 대항해 기업 경쟁력을 높여주는 전략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라고 호응했다.여야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난달 말 인텔 퀄컴 등 미 반도체 기업의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25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에 합의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에 공장이나 연구시설을 새로 지으면 최대 30억달러까지 지원하는 게 골자다. 국가안보상 고도의 기밀 유지가 필요한 생산 공정을 신설하면 국방부 등이 최대 50억달러의 개발 자금을 준다.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에 뒤진 미세공정화 기술을 만회하기 위해 50억달러의 R&D 자금을 별도로 책정했다.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데도 의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선 정부·국회가 규제 강화
정부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10개월 내 1000만 개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고, 중국에서 1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되찾아 온다는 청사진을 지난 8월 발표했다. 이를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감세 정책을 약속했다. 제약·로봇 등 필수 유망 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이 대표적이다. 이런 핵심 부문에선 실질적인 세부담이 ‘제로(0)’가 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지원 대상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재집권하기 위해 내세운 집권 2기 경제 공약이다.한국 내 상황은 이와 크게 다르다. 한국에선 매출 자산 등을 따져 일정 규모를 넘으면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 예산으로 큰 기업까지 지원하는 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또 기업들의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은 매년 늘고 있다.
국회는 실물경제 위기 속에서도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도 찬성하는 분위기다. 초강대국 미국이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올인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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