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한 미국과 영국 의학자에게 돌아갔다. C형 간염은 1989년 처음 확인된 뒤 28년 만인 2017년 완치 가능한 질환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가 혼돈에 빠진 시기에 단기간에 극복한 바이러스 질환 연구진에게 노벨상을 수여해 의미를 부여했다는 평가다.
노벨의학상에 미·영 의학자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하비 J 올터 미국 국립보건원(NIH) 교수(85)와 마이클 호턴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70), 찰스 M 라이스 미국 록펠러대 교수(68)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노벨위원회는 “세 명의 수상자는 간경변과 간암을 일으키는 주요한 건강 문제인 혈액 매개 간염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위원회는 “이들이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 만성 간염의 원인이 밝혀졌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신약도 개발됐다”고 강조했다.
바이러스 감염은 간염이 생기는 주요 원인이다. 주로 급성 간염을 일으키는 A형 간염 바이러스와 달리 만성 질환으로 이어지는 B·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간경화, 간암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증상이 악화하기까지 10~30년 정도 걸린다.
혈액을 통해 전파되는 B·C형 간염으로 매년 세계에서 100만 명 넘게 사망한다. C형 간염 사망자만 40만명에 이른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결핵과 함께 인류를 위협하는 질환으로 꼽힌다.
미국 국적의 올터 교수는 수혈을 받은 사람들이 만성 간염에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다가 바이러스성 간염 질환을 확인했다. 영국 국적의 호턴 교수는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새 리보핵산(RNA) 바이러스가 간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바이러스는 나중에 C형 간염 바이러스로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 국적의 라이스 교수는 침팬지 동물모델 연구를 통해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고 이 바이러스로 인해 간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C형 간염 바이러스 동물모델 수립
의료계에서는 C형 간염은 인류가 최단 시간에 극복한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평가했다. 유수종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C형 간염 바이러스는 1989년 처음 확인한 뒤 2017년께 완치율이 98%에 이르는 3세대 치료제가 상용화됐다”며 “바이러스를 발견한 뒤 동물모델을 만들어 연구 기틀을 마련하고 치료하기까지 3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극복한 바이러스성 질환은 C형 간염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그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바이러스 질환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바이러스를 극복한 훌륭한 사례”라며 “노벨위원회가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C형 간염을 발견해 동물 모델 등을 만들기 전까지 이 질환은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C형 간염은 짧은 시간에 변종이 많이 생겨 연구하기 까다로운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이다. 최종기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말라리아, 결핵, HIV, 바이러스성 간염 등 4대 감염 질환 중 하나에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속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며 “국내는 간경변증의 10%, 간암의 20% 정도가 C형 간염 바이러스 때문인 것으로 보고된다”고 했다.
코로나19에 비대면 시상식 개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상금은 1000만크로나(약 13억원)다. 노벨위원회 재정 상황이 나아져 지난해보다 100만크로나 늘었다. 세 명의 수상자가 상금을 나눠 받는다.매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던 시상식은 취소됐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올해는 수상자가 각국 대사관이나 대학 등에서 상을 전달받는 장면을 TV로 중계하는 비대면 시상식이 진행된다. 노벨상 시상식이 취소된 것은 2차 세계대전 기간이던 1944년 이후 처음이다.
매년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1000명 이상 모여 열리던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수용 인원이 100명 규모로 작은 오슬로대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노벨위원회는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8일 문학상, 9일 평화상, 12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이지현/최지원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