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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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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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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면을 바라보면 제일 먼저 보이는 웅장한 건물이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권브이’가 옥색 찬란한 돔 지붕을 열고 출동한다는 국회의사당 본청이다. 그 건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몰랐다.

정면에 우뚝 솟은 여덟 개의 기둥은 전국 8도를, 전체 스물네 개의 기둥은 한 해 24절기를 의미한다. 본회의장 천장에는 무려 365개의 전등이 빛나고 있는데 1년 내내 국회를 지켜보는 국민을 상징한다고 하니 문득 긴장되기도 했다. 둥근 반원 형태의 돔 지붕은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각축을 거쳐 하나로 모아진다는 의회민주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고 한다.

역사도 깊다. 광복 이후 1948년 서울 종로구 중앙청을 시작으로 6·25전쟁 때는 대구·부산의 문화극장, 경상남도청 무덕전 등으로 옮겨 다니며 의회를 열 수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의 흔적! 이후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인 태평로 국회의사당 시대를 거쳐 1975년 드디어 지금의 여의도에 자리를 잡았으니, 참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는 곳이 바로 국회가 아닐까 싶다.

언제나 유서 깊은 장소에는 보이지 않는 위엄 같은 것이 서려 있다. 오래된 1000년 고성의 돌담 켜켜이 쌓인 검푸른 이끼와 같은 그윽한 위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속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마주할 때 느껴지는 수백 년의 시공(時空)을 초월한 그런 숭고한 위엄 말이다.

사실 국회도 그런 공간일 거라는 ‘로망’이 있었다. 평소 쉽게 다가갈 수 없기도 했고, 또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와 가치, 철학과 이데올로기, 신념과 갈등, 땀과 눈물,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경마저 모두 녹아 있는 곳이 바로 국회이기 때문이다. 그 위엄은 여와 야도 넘고, 보수와 진보도 넘고, 지역과 세대도 초월해야 하며 위엄의 원천이자 주인은 오로지 국민이어야 한다. 국민이 만들어준 이 존엄한 울타리 안에서 그 공복(公僕)인 국회의원들이 공명정대하게 주어진 바를 받들어 행하고 있다는 그런 무거움과 엄중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국회에서 과연 그런 위엄과 아우라를 느꼈을까?

나의 역사도 국회에 남겨질 것이다. 비단 속기록이나 영상회의록만이 아니다. 내 모든 의정활동, 법률개정안, 예산심사, 국정감사 그리고 수많은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공기 중에, 본회의장의 연단 위에, 때로는 본청을 오르는 돌계단 아래 한 꺼풀 한 꺼풀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진심 어린 시간들이 모여 깊어가고 익어가면서 진정한 국민의 국회라는 위엄으로 거듭나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

많은 국민이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에 실망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의 미래 세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슴 벅찬 위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무엇을 추구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자문한다. 또다시 어깨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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