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의 대가 하종현 화백(85)은 1960년대 중후반까지 앵포르멜 미학을 바탕으로 한 뜨거운 추상과 기하학적 구조의 차가운 추상을 다양하게 실험했다. 1969년 전위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설립한 후 1970년대 중반까지는 밀가루와 흙, 신문지, 석고, 로프, 각목, 철사, 철조망 등 다양한 매체와 오브제로 실험적인 작업방식에 도전했다.
그의 대표작 ‘접합’ 연작도 이런 실험정신의 결과로 탄생했다. 6·25전쟁 이후 미국에서 들여온 곡식 포대인 마포자루로 캔버스를 만든 뒤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앞면으로 밀어내는 작업 방식을 고안해 미증유의 조형미를 탄생시켰다. 여러 겹으로 중첩된 패턴과 원·삼각형·사각형 등 기하학적 도상을 사용한 1967년 작품 ‘탄생-B’에는 하 화백이 실험정신에 투철했던 초기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전환과 역동의 시대’에도 출품됐던 작품이다.
탄생 시리즈 A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탄생-C’ 시리즈는 홍익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탄생-B’는 높은 미술사적 가치와 소장 가치가 더해져 지난 24일 케이옥션 9월 경매에서 열띤 경합 끝에 1억8500만원에 낙찰됐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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