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서 주변 시세보다 크게 저렴한 아파트 40여 가구가 추첨식으로 팔린다. 삼성동에 있는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사들여 리모델링을 추진했던 이지스자산운용이 통매각 방침을 접고 개별 매각하기로 해서다. 주변 시세에 비해 최대 50%가량 낮은 가격에 팔릴 수 있어 화제를 모을 전망이다.
27일 부동산금융업계에 따르면 이지스는 최근 교보자산신탁과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서울 삼성동 삼성월드타워 아파트(사진) 46가구의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매각 공고를 하고 신청을 받은 뒤 추첨을 통해 분양한다는 방침이다.
이지스는 매입 당시 가격 그대로 아파트를 매각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매입 가격을 고려하면 전용면적 83~84㎡형 가운데 방이 세 개짜리인 26가구는 10억~11억원대에 팔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주변의 비슷한 면적 아파트 시세는 16억~18억원에 형성돼 있다. 58.77㎡ 20가구는 7억원대의 가격이 예상된다.
삼성월드타워 아파트는 서울 지하철역 7호선·분당선 강남구청역 인근 대로변의 한 동짜리 아파트로 1997년 준공됐다. 이지스가 총 420억원가량에 기존 소유자로부터 매입했다. 아파트 원소유주가 20여 년간 전·월세로 임대하던 단지로 일부 가구는 임차인이 퇴거했기 때문에 곧바로 입주할 수 있다. 나머지 가구는 현재 임차인의 임대차 기간이 끝나야 입주할 수 있다. 이지스가 당초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임차인과 일괄적으로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으나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소급 적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삼성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거래 시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고 매수인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도 해당해 시가 9억원 이하는 담보인정비율(LTV) 40%까지, 9억원 초과 15억원 미만은 20%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수억원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매물이 드물기 때문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 매입 이후 곤욕을 치렀던 이지스는 최대한 잡음 없이 매각을 마무리짓겠다는 방침이다. 7월 이지스가 사모펀드(PEF)를 활용해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SNS를 통해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라고 비판했다. 이후 법무부와 검찰을 비롯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 ‘불법행위가 있는지 조사하겠다’며 사업 중단을 압박했다.
이지스는 결국 사업을 포기하기로 하고 “부동산 가격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후 통매각 계획을 세우고 다른 자산운용사와 공기업·사기업 등을 대상으로 매수 의향을 한 달 이상 타진했으나 결국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홍선표/이현일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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