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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에 민·형사 책임까지…기업 '삼중 처벌'에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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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을 추진하면서 기업들이 ‘트리플 리스크’ 공포에 떨고 있다. 잘못을 저질렀다간 정부의 과징금을 맞고 검찰에 기소돼 형사재판에 넘겨질 뿐 아니라, 소비자들로부터 천문학적 금액의 민사소송까지 당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삼중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법조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기업과 기업인들의 ‘형사 리스크’는 이미 작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285개 경제법령 가운데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에 이른다. 처벌 기준도 모호하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배임죄와 자본시장법 위반의 경우 구성 요건이 모호해 정상적인 경영활동과 인수합병 등이 범죄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량도 세다. 대표적 기업인 범죄로 꼽히는 횡령·배임죄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범죄피해액이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이면 기본 징역 4~7년에 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참작 동기 살인(징역 4~6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참작 동기 살인이란 본인 또는 친족이 살해 위협을 받아 저지른 살인 등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소송 남발로 인한 민사소송 리스크까지 겹치게 될 전망이다. 이번 법무부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기존에 시행 중인 증권 관련 집단소송과 달리 소송대리인 자격을 완화하는 등 소송 남발을 억제할 장치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기업을 상대로 한 기획소송이 봇물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주로 기업인이 피의자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는 무죄율이 일반 범죄보다 세 배나 높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년간 기업에 패소해 돌려준 과징금은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한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만큼 형사처벌과 과징금 단계에서 기업에 ‘아니면 말고 식’ 딴지를 거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집단소송제 등이 도입되면 민사 영역에서도 기업을 상대로 한 마구잡이식 소송이 벌어질 게 뻔하다”며 “기업이 승소하더라도 법적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형사처벌도 센데 손해배상으로 더 때려…코너 몰리는 기업인들
정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두고 산업계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건 “기업인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이중 삼중으로 과도한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기업 활동을 옭아매는 ‘족쇄’만 늘었다”는 정서가 강하다.

국내 법은 기업이 법을 위반하거나 과실을 범할 경우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등 행정적 조치와 함께 형사처벌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는 소비자들이 막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민사적 처벌’까지 허용하는 셈이다. 기업으로선 부담감이 크다. 국내 법 체계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해외에서도 오랜 기간 부작용이 지적된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급하게 확대 적용한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기업에 막대한 비용 소요와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형사처벌로도 충분한데…
정부가 추진하는 집단소송제는 그동안 증권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던 것이 모든 분야로 확대 적용되는 것이다. 집단소송제는 영국과 미국 등 영미법 체계를 갖춘 국가에서 주로 발달했는데, ‘대륙법’ 체계를 갖춘 국내에선 어떻게 적용될지 우려가 나온다. 법조계에선 “한국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과중처벌’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륙법 체계는 독일, 프랑스 등을 따라 ‘성문주의’에 뿌리를 둔다. 입법부에서 만든 법을 근거로 판사가 판결을 내린다는 의미다. 피해보상 청구 소송의 경우 정해진 절차를 통해 피해를 증명해야 한다. 손해배상액도 피해 한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정해졌다. 민사배상과 형사처벌의 경계가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반면 영미법계에선 판사의 권한과 재량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 피해보상을 청구할 때도 보상 범위가 훨씬 넓다. 피해자가 입은 실제 손해에 더해 사회 전반적으로 끼친 손해, 기회비용 등까지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내 기업들이 집단소송에서 패소한 뒤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게 되는 사례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등은 대륙법계에 비해 현저히 완화돼 있다. ‘금전적 배상’으로 충분히 책임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및 처벌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처하게 됐다”며 “행정·형법·민사적 처벌을 다 고려하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5배’ 배상 원칙도 근거 부족
징벌적 손해배상제 역시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위법행위를 한 기업에 실제 손해액의 최대 다섯 배까지 물게 하는 제도다. 기존의 과징금 부과 및 형사처벌과 함께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오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행하기 어려운 계약 조건을 슬그머니 끼워넣은 다음 이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뒤집어 씌우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한적으로 적용되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일반적인 민사 책임 범위로까지 확대하면 손해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법률적 전문지식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업자들이 억울함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재판 결과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판은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신청한 사안에 대해 판결하는 것인데 소송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손해배상을 해주는 것은 기업의 방어권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기존의 배임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만 하더라도 업무상 배임죄가 없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통해 민사 재판 대상으로도 삼지 않는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진이 성실하고 공정하게 경영상 판단을 통해 기업 활동을 했다면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면하는 법리다.

김상곤 광장 변호사는 “징벌적 배상금 액수를 어떻게 산정할지도 모호하다”며 “미국처럼 기업에 대한 민사 소송의 가능성은 열어주되, 배임죄 같은 형사적 책임은 면제해 ‘이중 철퇴’ 요소를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혁/안효주/남정민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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