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간 가파르게 오르던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미국 유럽 한국 중국을 가리지 않고 최근 시장은 힘을 못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예상했던 ‘조정’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확실성은 조정의 또 다른 빌미가 되고 있다. 기술주(株)가 이끌던 미국 증시는 ‘대선’이라는 변수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전 세계 증시가 ‘과속 방지턱’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주가를 밀어 올린 기업들의 성장성이 훼손되지 않은 것은 과거 급락 때와는 다르다는 평가다.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시장
미국 다우지수는 이달 들어 5.86% 하락했다. 하반기 들어서도 7월 이후 두 달간 10% 넘게 가파르게 오르던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다우지수는 지난 3월 코로나 폭락장 이후 반년 동안 59.77% 급등하면서 ‘과속’에 대한 우려가 나왔던 터였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온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도 이달 들어 9.70%나 떨어졌다.나스닥이 23일(현지시간) 조정을 받은 표면적 이유는 테슬라의 배터리데이였다. 평소 같았으면 평범한 이벤트였겠지만 ‘자극’에 익숙한 투자자들은 기대 이하였다고 평가했다. 이예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니콜라 창업자 사임과 테슬라 배터리데이 이후 기대감 소멸 등으로 증시의 상승 탄력이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올 들어 급증한 증시에 대한 비관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자회사 모트캐피털의 마이클 크레이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20년 전 나스닥100지수가 151일 동안 86% 급등하다가 폭락했다”며 “올해 들어 161일간 84% 상승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유동성도 한계?
증시를 끌어올린 막대한 유동성의 힘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대형주 하락폭이 커졌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경제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2일 의회에서도 “경제 충격을 막기 위해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지난달까지만 해도 파월의 이런 발언에 증시는 환호했다. 시장에 돈을 쏟아붓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주가도 뛰었다. 지금은 반대다. “경제가 진짜 어렵다”는 인식과 함께 재정 확대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시장이 이렇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던 미국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제대로 정책을 펴기 힘들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옥석 가리기 불가피
글로벌 증시 흐름도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난 중국 상하이지수도 이달 들어 5%가량 하락했다. 13.77% 올랐던 지난 7~8월과는 다르다. TSMC가 증시를 이끌던 대만 자취안지수를 비롯해 홍콩 일본 등도 일제히 이달 들어 내림세다.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글로벌 시장의 공포감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지난 7일간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 평균 4만3000명에 달한다. 유럽에도 코로나 공포가 다시 퍼지고 있다. 지난 21일 유럽 주요국 증시는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봉쇄 우려와 은행주 불안 등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옥석 가리기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주도주 하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지 아니면 주도주를 매수할 기회인지를 두고 여러 가지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주식시장이 과속방지턱에 걸린 것 같다”며 “경제지표들도 엇갈린 모습을 보이는 만큼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단기 조정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닷컴 버블’과 비교해 현재 나스닥시장의 랠리를 거품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있고, 밸류에이션 부담도 그때보다 덜하다”고 분석했다. 올해 글로벌 증시를 이끌어온 주도주들의 성장성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박재원 기자/뉴욕=조재길 특파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