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1급 법정 감염병을 이유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과 임차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법 시행 후 6개월 동안 발생한 연체 임대료는 계약해지 또는 계약갱신 거절 사유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명확한 임대료 인하폭과 기간 등을 제시하지 않아 갈등과 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임대인들이 기존 임차인에게 본 손실을 신규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등의 부작용도 예상된다.
인하폭 등 세부 기준 없어 혼란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이르면 다음주 시행될 전망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코로나19 등으로 피해를 본 임차인이 임차료 인하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임대인이 임차료 감액 요구를 거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임차인은 분쟁조정위원회 또는 소송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임차인이 승소할 경우 최초 감액 청구를 한 시점부터 소급 적용해 임대인이 차액을 물어줘야 한다.그러나 개정안에는 구체적인 임대료 인하폭과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감면액과 기간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결정하도록 했다”고 설명했지만 규정이 불명확해 갈등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개정안은 또 법 시행 후 6개월간 임대료를 연체해도 임대인이 계약해지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현행법은 3개월간 연체할 경우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따라서 최대 9개월간 연체할 때까진 임대인이 손쓸 방도가 없다.
전문가들은 임차인에 대한 과도한 보호조치라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료 인하와 연체 허용 등의 규정은 임차인만 생각한 것”이라며 “노후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상가에 투자한 노년층 등에겐 치명적인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임차인 보증금 대폭 올릴 수도
자영업자들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정도로 월세를 체납한 이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당장 꿀 같은 정책이 나중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풍선 효과’ 때문이다. 건물주들이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폭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법을 통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고통 분담’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상가업계 관계자는 “서울 선릉, 역삼 등 핵심 상권의 건물은 몇몇 부동산 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은 소송을 불사해서라도 임대료 하락을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건물 임차가 많은 편의점업계는 법 개정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대학과 유흥상권 내 출점은 사실상 불가능해 신규 창업이 대부분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몰리고 있다”며 “임대료 인상을 자제해온 건물주들이 다른 곳에서 난 손실을 메우려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편의점 A사는 본사가 직접 임대차 계약을 맺은 점포 1000여 곳을 기준으로 임차료(지난 8월 말 기준)가 1년 전보다 평균 14.5% 내려갔다. 서울 명동 등 인기 상권의 권리금도 코로나19 확산을 전후로 30~40%가량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건물주들이 이번 법 개정 때문에 추후 주택가 신규 입점 때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상가 시장에서도 소송 대란 우려
3년 전 고정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아 서울 약수동 상가 건물에 투자한 70대 A씨는 “생계가 막막한 임차인과 비교해 건물이라도 있으니 사정이 훨씬 나은 것 아니냐는 말을 듣지만 실상은 임대료가 유일한 소득”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임대인이 임차인의 감액 청구 등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이 때문에 이번 개정안 시행 후 소송 등 분쟁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용부동산센터장은 “경기침체로 주요 핵심 상권의 공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임대인들이 생존 차원에서 저항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권대중 교수는 “법으로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전셋값 급등을 가져온 주택임대차보호법과 비슷한 부작용이 상가 시장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진석/박동휘/정인설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