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로에서 이제 BMW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너무 흔해져 버린 BMW 중에서도 아직 쉽게 볼 수 없는 모델이 있다. 20년 만에 부활한 8시리즈다. ‘BMW 중에 남들 타는 것 말고 더 좋은 것 없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타봤다. 럭셔리 스포츠카 ‘뉴 840i xDrive 그란 쿠페’다.
첫인상. 스포츠카답지 않게 고급스럽다. 우선 넓은 차체가 바닥에 낮게 깔려 역동적이다. 긴 휠베이스(앞뒤 바퀴 축 간격)를 바탕으로 한 BMW 특유의 짧은 오버행(차체 후면부터 뒷바퀴 차축까지 거리)이 더 두드러진 모습이다.
6각 형태의 키드니 그릴과 BMW 사상 가장 얇은 LED(발광다이오드) 헤드라이트는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슬림한 창문 디자인과 클래식 스포츠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더블 버블’ 루프 라인도 매력 포인트다. 기본 탑재된 파노라마 글래스 루프는 개방감을 더한다.
운전석 문을 열고 앉아 봤다. 우선 낮은 차체가 안정감을 준다. 양쪽 옆구리까지 감싸 안는 듯한 좌석에선 포근함마저 느낀다. 뒷좌석에 탄 아내도, 그 옆 베이비시트에 앉은 아이도 동의한 부분이다. 통합 헤드레스트가 적용된 덕분이다. 시트는 기본 4개지만, 단거리 주행 땐 뒷좌석 중간 시트에도 앉을 수 있게 설계됐다.
운전석은 전체적으로 비행기 조종석과 비슷한 느낌이다. 고해상도의 12.3인치 계기판과 크리스털 소재의 글라스 인테리어 덕분이다. 어두워지면 켜지는 앰비언트 라이트도 실내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한다. 아내는 “투 머치한데”라고 했지만.
이제 밟아 보자. ‘부아앙’ 엄청난 배기음을 내며 달려 나간다. 마치 이륙할 것 같은 기세다.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이 뿜어 내는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직접 재보진 않았지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기까지 4.9초밖에 안 걸린다고 한다. 운전의 재미는 있지만 도심에선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스포트’가 아닌 ‘에코 프로’ 모드로 주행하면 보통 승용차와 비슷한 느낌이다.
변속 때 가속력이 특히 뛰어나다. 8단 스텝트로닉 스포츠 자동 변속기 덕분이다. 시속 150㎞ 이상에서도 편안하다. 주차도 쉽다. 막다른 골목에서 최대 50m까지 자동으로 후진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후진 어시스턴트’ 기능이 새롭게 추가됐다. 트렁크도 쓸만하다. 골프백을 가로 또는 세로로 넣긴 어렵지만, 대각선으로는 들어간다. 골프백 2개까지 포개서 넣을 수 있다. 남은 공간엔 보스턴백까지 실을 수 있을 정도다.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도 몇 가지 소개한다. 우선 쿨시트 기능을 작동하면 다소 시끄럽다. 바람 나오는 소리가 좀 크다. 땀이 많은 운전자라면 신경 쓰일 수도 있겠다. 아내는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덜컹거림이 비교적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운전 실력보단 차체가 낮아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8시리즈엔 가솔린 모델인 쿠페와 그란 쿠페, 디젤 모델의 그란 쿠페 등 3종류가 있다. 가격은 1억3000만원대다. 여유 있는 미혼, 자녀가 두 명 이하인 여유 있는 부부 등에게 권한다. 같은 BMW라고 모두 같은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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