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재직 시 한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기업집단국 신설이다. 그가 조직을 개편해 공무원 60명으로 기업집단국을 신설할 때인 2017년 9월에 이미 알아봤다. 이 조직이 한국 대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사실 말이다. 지금 한국 대기업 그룹에 대한 공정위의 도를 넘은 감찰 사례를 보면 이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한국 공정위의 기업에 대한 조사는 악명 높다. 형식은 임의조사이나, 실제는 강제조사란 지탄을 받는다. 문제는 이 조사 절차에 통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 들여다보는 데도 영장이 필요하고, 그 영장을 집행하는 데 몸싸움까지 일어나는 판이다. 그런데도 공정위 조사는 기업의 자료를 저인망식으로 훑으면서도 사법기관의 영장은 필요 없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예측가능성도 없다. 심지어는 극히 민감한 영업비밀 자료까지 털어간다고 하니, 비밀 유출 가능성에 진땀이 난다고 한다. 조사와 심사에만 보통 4~5년이 걸린다. 그 사이 담당관이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고 기업은 자료를 또 제출해야 한다. 도대체 누가 공정위를 이런 괴물로 만들어 놓았나?
최근 공정위는 ‘기업집단 관련 신고 및 자료제출의무 위반 행위에 대한 고발지침’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셀프 만능영장’을 발급한 것처럼 보인다. 지침에 따른 것이니 영장이 필요 없다고 할 것 아닌가.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는 계열사 설립 및 출자, 계열사 지분구조, 최대주주의 지분 보유 현황 등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다. 기업 그룹들은 공정위 대응 전담팀을 둘 수밖에 없다. 영업에 투입해도 모자랄 아까운 고급 인력을 생산성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런 행정 처리에 매달리게 만든다. 신고·공시·자료제출 요구사항도 대중없다. 아무 의미 없는, 단지 그 공무원 개인이 알고 싶은 걸 요구하는 느낌이라고 당해본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기업이 잘못 보고하거나 보고 내용을 누락했을 때 공정위는 기업집단 총수와 법인을 검찰에 고발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총수, 최고경영자(CEO) 또는 대주주가 형사처벌을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고, 주식 소유 등 투자에도 제약을 받는다. 법인이 기관 경고를 받으면 금융기업은 감독당국 등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 분야 진출이 어려워진다. 국민연금의 비공개 감시 대상에도 오른다. 대(對)공정위 업무는 아무리 잘해도 빛나지 않으면서, 잘못되면 윗사람과 회사 자체가 처벌받는 구조다. 기업 내 공정위 대응 부서는 최악의 기피부서가 되고 있고, 담당 직원은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다.
조사 후 심사 절차는 단 1회로 종료한다. 심사 절차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제재를 결정한다.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3심제도도 없다. 롯데마트는 2019년 411억8500만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과징금 액수도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인데, 충분한 해명 기회도 주지 않아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전부 소송으로 간다. 그런데 공정위가 법원에서 완전 승소한 사건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5년간 공정위가 제재한 부당지원 사건에 대해 제기된 행정소송에서 10건의 확정판결이 나왔는데 그중 공정위가 완전 승소한 것은 2건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기소의 허무한 결과에 대해 공정위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공정위는 기업을 압박하고 국고를 낭비하는 기관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기 전에 스스로 불필요한 조직을 축소하고 조사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조사 결과에 대한 심사 절차에서 해당 기업에 충분한 의견진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집단국을 폐지해 기업에 대한 감찰을 자제해야 한다. 사법기관의 영장도 없고, 아무런 통제도 없이 민감한 기업정보까지 훑어가는 악습을 멈춰야 한다. 무리한 기소로 패소한 사건을 담당한 공무원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고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에 사과해야 한다. 지금 공정위가 우리 기업들에 민폐 기관이 되고 있는 것을 공정위는 알고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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