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A시리즈’, 삼성전자 ‘엑시노스’, 퀄컴 ‘스냅드래곤’.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암홀딩스(ARM)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됐다는 데 있다. ‘팹리스 중의 팹리스’로 불리는 ARM이 엔비디아 품에 들어가게 되면서 국내 반도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은 ‘리그’가 달랐던 엔비디아가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팹리스 기업 엔비디아는 영국의 ARM을 소프트뱅크로부터 400억달러(약 47조3500억원)에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자사 주식 215억달러어치와 현금 120억달러, 계약금 20억달러를 소프트뱅크에 지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 팹리스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는 주력 시장이 겹치지 않는 ‘옆동네 주민’이었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한 뒤 이들 기업이 같은 동네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이 새로운 경쟁무대가 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분야로 시장을 넓히면서 차량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모바일 AP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ARM을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동차 AP는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꼽는 분야 중 하나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연구개발(R&D) 조직을 신설하는 등 차세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의 동지에서 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모바일 AP 기초설계의 90% 이상을 맡고 있는 ARM의 시장지배력도 잠재적 위협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퀄컴 등은 ARM의 기초설계에 자신들의 노하우를 더해 제품을 설계해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라이선스 사용비를 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당분간은 쉽지 않다는 게 반도체업계의 분석이다. 안기현 반도체협회 상무는 “각 진출국 정부의 인수 승인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높여 반독점 논란을 키울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엔비디아가 ARM 기술을 활용해 모바일 등 영역으로 확장하면 위협은 더 커진다”며 “반면 반도체 생산을 늘리게 되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부문에서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