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지방 소도시 경북 구미가 외지인들로 들썩였습니다. 읍·면 단위 시골 마을에까지 낯선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했습니다. 관광객들이냐고요? 아닙니다. 아파트를 사러 온 ‘갭투자자’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공인중개업소를 돌며 쇼핑하듯 아파트를 사갔습니다. 집을 서로 사겠다고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구미 현지인 집주인들이 매수자들 간의 경쟁을 본 후 계좌를 쉬이 내주지 않자 마치 경매처럼 그 자리에서 서로 200만~300만원씩 값을 높여 부르는 진풍경도 벌어졌습니다.
스타강사 추천에 수백명 전세버스 대절…경매처럼 값 높여서 계약
상황이 이렇게되자 집값은 고공행진하며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씩 뛴 단지들이 나왔습니다. 구미 옥계동에 위치한 ‘현진에버빌엠파이어’ 전용 103㎡ 아파트는 8월 말 3억5000만원에 팔렸습니다. 1년여 전 2억1900만원에 거래됐다는 점과 비교하면 1년새 1억원이 넘게 올랐습니다. 36년차 오래된 아파트도 작년 말에 비해 매매가가 2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공단동 ‘주공4단지’ 전용 39㎡는 작년 11월 3500만원에 팔렸지만 지난 7월에는 7500만원에 새주인을 찾았습니다.한국감정원 통계에서 이같은 매수 열풍이 감지된 것은 6월 말 즈음입니다. 마이너스(-)30~-20%대를 넘나들던 집값 하락율이 갑자기 ?0.03%대까지 줄어든 것입니다. 2016년 10월부터 단 한차례도 오른 적 없던 집값이 7월들어 플러스(+)로 반등했습니다. 8월 마지막주에는 집값이 0.34%나 치솟았습니다. 전국 매매가 상승율 10위권 지역 중 지방 중소도시는 구미가 유일했습니다.
전국 갭투자자들은 왜 갑자기 구미로 몰려갔을까요. 비규제지역인데다가 오랜기간 값이 오르지 않았던 저평가지역이라서 그랬을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구미 갭투자 열풍 이면에는 ‘스타 강사’가 있었습니다. 한 전업투자자에 따르면 스타 강사들이 갭투자 지역으로 구미를 찍은 것이 이미 4월이라고 합니다.
거래량이 급증한 것도 4월이 지난 직후부터입니다. 거래량 통계를 보면 구미 아파트 거래는 4월 434건, 5월 898건에서 6월 1641건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외지인 거래 비중은 더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4월 외지인 투자자들의 매입 비중은 21%에 불과했지만 4월엔 37%로 뛰었으며, 5월엔 43%로 상승했습니다.
공단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 이모씨는 “이미 5월 초에 투자자들이 몰려들어와 6월쯤에는 매수할 만한 물건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며 “공단동 주공아파트들은 이미 5월 초에 외지인들이 전부 싹쓸이 해갔으며 작년부터 1년 내내 미분양에 시달리던 공단동 '효성해링턴플레이스'도 5월에 싹 다 팔렸다”고 전했습니다.
어쨌든 집값이 올랐으니 현지인들은 노났다고요? 아닙니다. 7·10대책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강화된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가 전국적으로 적용되면서 구미 주택시장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갭투자자들이 지방 주택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수천만원씩은 기본으로 뛰었던 분양권 프리미엄은 ‘제로(0)’로 주저앉았습니다.
서울에 집을 한 채, 구미 등 지방에 소형 주택 세 채를 가진 K씨는 최근 지방의 주택 모두를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한 전업투자자는 “갑자기 세 부담이 너무 커지니 다주택자들이 대부분 올해 안에는 지방 주택들을 정리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갭투자자들 지방 아파트 물건 정리…지역 실수요자들 '울상'
상황이 이렇다보니 꼭지에 집을 샀던 실수요자들은 울상입니다. 전세를 찾는 세입자들도 고민입니다. 구미 집값이 뛰었던 6~8월 동안 전셋값도 많이 뛰었습니다. 입주물량이 줄어든 탓도 있습니다. 하지만 갭투자자들이 전셋값이 올린 영향도 있습니다. 대표는 “투자자들이 내놓은 전세 매물이 갑자기 늘어 가격을 낮춰 세입자를 받자고 조언했더니, 그러면 다른 중개업소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며 “투자자 1~2명에 전세 거래를 최소 5~6건을 하니 이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보증금을 올려 내놓자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중개업소들도 다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덕분에 갭투자자들은 최대한 갭을 줄여 집을 많이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1억원만 있으면 갭을 1000만원으로 맞춰 10채씩은 매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실제로 구평동 '부영5단지' 전용 69㎡는 6월에 이 집을 7200만원에 매수한 매수자가 나타나자마다 전세로 7000만원에 계약이 나왔다. 갭은 2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7월에 팔린 인의동 '인동서한이다음' 전용 84㎡는 갭이 제로(0)였습니다. 2억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된 후 같은 2억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습니다. 심지어 옥계동의 '옥계에덴' 전용 71㎡은 갭이 마이너스(-) 2700만원에 달했습니다. 이 주택을 4100만원에 매수한 매수자가 전세계약은 6800만원에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매매 계약을 하고 세입자에게 돈을 받은 셈이 됐습니다.
이미 전셋집에 들어간 세입자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집값이 내리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서입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34)는 지난 7월 구평동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7000만원을 주고 전세를 얻었습니다. 전세를 얻을 당시 집값은 7000만원 중반대라 전세 보증금보다는 매매가격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단지 매맷값은 6000만원 중반대까지 떨어진 상황입니다. 김씨는 “앞으로 구미 부동산시장의 전망이 안좋다는 말이 들려오니 불안하다”며 “전세 보증금을 어렵게 마련했는데 나중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돼 죽겠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되레 “집값이 더 떨어질까요?”라고 물어왔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