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수혜는 전통시장이 아니라 기업형 식자재마트가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을 보호 육성한다는 취지로 2010년 대형마트 출점 규제, 2012년 의무휴업 지정 등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소비자들을 대형마트에서 식자재마트와 온라인쇼핑몰로 옮아가게 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복합몰까지 규제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구상이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규제에도 전통시장 매출 사실상 뒷걸음
2010년부터 강화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반경 1㎞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정하고 구역 내에서 3000㎡ 이상 면적을 가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신규 출점을 금지하고 있다. 또 월 2회 휴업을 의무화하는 등 영업시간도 제한하고 있다.이 같은 규제는 대형유통사에 직격탄을 날렸다. 2015년 404개였던 대형마트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점포 수는 지난해 405개로 1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부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롯데마트는 올해 16개 매장을 정리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125개이던 롯데마트 국내 매장은 연말 109개로 줄어든다. 홈플러스도 점포 매각에 나서는 등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전통시장은 활성화됐을까. 6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통시장·상점가 및 점포경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전통시장 매출은 23조9000억원이었다. 대형마트 규제를 시작한 2010년(21조4000억원) 이후 2조5000억원(11.6%) 늘었다. 정부가 전통시장 지원에 쓴 누적예산(2조483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8년간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면 매출은 오히려 뒷걸음친 셈이다. 같은 기간 전국 전통시장 수도 1517개에서 1437개로 줄었다.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되기 전인 2005년(27조3000억원)에 비해서는 오히려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일각에서는 대형마트 출점규제 등의 정책이 전통시장의 급속한 몰락을 막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식자재마트 규제 사각지대에서 급성장
그러나 대형마트로 몰리는 소비자를 전통시장으로 돌리겠다던 당초 정책 목표는 완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마트와 SSM으로 발길을 돌린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 아니라 대형마트보다 규모가 작아 규제를 받지 않는 ‘준대규모점포(중형 슈퍼마켓)’로 몰렸기 때문이다.업계에 따르면 중형 슈퍼마켓은 전국 6만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식자재마트는 면적이 3000㎡를 넘지 않으면서 각종 식재료를 저렴하게 팔아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많이 찾는다.
이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도입된 2012년 이후 전통시장이나 대단지 아파트 인근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구에 거점을 두고 13개 직영점을 운영 중인 장보고식자재마트는 지난해 매출 3164억원을 올렸다. 2013년 1576억원에서 6년 만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지난해 1964억원의 매출을 올린 우리마트는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경기 지역에서 식자재마트를 운영하는 윈플러스마트와 세계로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1749억원, 989억원이었다. 일본계 슈퍼마켓인 트라이얼코리아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영남 지역에서 트라이얼마트, 트라박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대 뒤떨어진 영업규제 접어야”
업계 관계자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형 식자재마트가 최근 몇 년 새 몸집을 불렸다”며 “지방에 있는 전통시장 주변으로 무분별하게 출점하면서 시장 상인회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만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자상거래로 소매업의 중심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대형마트 규제로 전통시장이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대형마트 규제 이후 사람들은 전통시장이 아니라 식자재마트로 향했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로 소비자들만 불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김기만/노유정 기자 mgk@hankyung.com